'△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몇 해 전 우연히 접한 프랑스의 대입 자격시험 바칼로레아 문제들 가운데 몇 개이다. 인간 정신과 예술, 과학, 정치와 도덕 등 다방면에 걸쳐 만만찮은 독서량과 심오한 사유, 논리적 글쓰기 능력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사지선다형 정답과 승리만을 강요하고 이를 위한 복종과 편법만을 가르치는 우리 사회와 교육시스템 속에서 바라보면 놀랍고도 부럽다.
몇 해가 지난 올해, 우리 대학들의 입시 논술 문제는 외견상 바칼로레아에 근접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아도르노(독일의 예술가)의 글과 이에 반대되는 글에 담긴 논거를 파악하고 제시된 통계자료를 두 글과 관련해 해석하라.(성균관대)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H 램의 '기후의 역사'에 나타난 인류문명 역사의 관점을 비교'분석하고 의견을 제시하라.(경희대) △'세월이 흘러감'에 대한 생각을 '욕망'과 연관시켜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라.(연세대)'
그러나 문제를 풀어가는 양쪽 학생들은 천양지차다. 프랑스의 수험생들은 어려서부터 교과서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요약하고 비판하는 수업과 숙제에 익숙해 있다. 일년 동안 수십 권의 책을 읽어야 하고 때로는 한두 달에 걸쳐 논문 형태의 과제물까지 제출한다. 이렇게 닦은 독서와 사고와 논술의 총체적인 능력을 바칼로레아에 담아낸다. 시험은 2주 이상 계속되며, 언론과 국민들이 어떤 문제가 출제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너나없이 토론의 주제로 삼는다.
우리의 현실은 참담하다. 수능시험까지는 교과서와 문제 풀이에만 매달리다가 겨우 한두 달을 남겨놓고 논술이나 심층면접 준비를 시작한다. 그 많은 책을 읽고 사유하기에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니 사람과 책과 주제를 암기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심지어는 논술문의 내용과 형태까지 외워버린다. 부모는 자식이 무슨 시험을 어떻게 준비하는지가 아니라, 어느 학원 어느 강사가 족집게인지 찾아다니는 데 몰두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초'중학생들 사이에 책읽기와 글쓰기 붐이 서서히 일고 있다는 것이다. 2008학년도 대입에서 독서이력철이 중시되고 논술과 심층면접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리란 전망이 빚어낸 결과다. 비록 망국병이라 불리는 대학입시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해도 제대로만 된다면 나쁠 게 없다.
관건은 학교 교육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느냐이다. 교사 연수를 강화하고, 수업과 업무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의 독서 결과를 꼼꼼하게 체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급선무다. 책읽기와 글쓰기마저 사교육에 내맡긴다면 학교 교육의 미래는 없다는 공감대부터 굳건히 해야 한다.
'한 달 동안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작품에 비친 시대 상황과 사회'경제적 여건을 분석하고 오늘날과 비교해 논하라.' 이런 숙제가 학교에서 거부감 없이 주어질 수 있다면 우리 교육에 대한 염려도 많이 사그라질 것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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