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면 하얀 화선지 위에 그려진 추사의 세한도를 생각할 때가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한 장의 그림은 국보 180호로 지정될 만큼 잘 알려져 있고 그의 추사체 글씨보다 더욱 유명한 한국의 최고 그림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추사가 1844년에 제주도 유배지에서 책을 구해준 한 제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그림으로 수묵의 마른 붓질과 필획의 감각만으로 그려진 중국 남종화풍의 간결함을 보여준다.
옆으로 뉜 화면에는 한 채의 초가와 주위에 소나무 두 그루가 대칭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처럼 극도로 생략 절제된 요소들은 모두 문인화의 특징으로, 직업화가들의 인위적기교주의에 반발해 의도적으로 이와 같은 수법을 쓴 것으로 보는 견해들도 있다.
그의 농축된 내면 세계에서 비롯된 필선과 묵색이 풍기는 담백, 아담한 분위기는 문인화가 지향한 사의(寫意)와 문기(文氣)를 여지없이 보여줌으로써 조선시대 문인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 뒤에는 누가 보아도 소재나 기법 자체가 다분히 중국적이라는 것은 냉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아마추어 화가 수준의 묘사력을 뒤로 하고 숙련된 서예적 필묵성격의 표현이 현대적 심미안과 감각에 맞아떨어진 것이 아닐까? 그리고 당대에서 감히 세도가인 그의 작품을 누가 평가절하할 수 있었겠는가? 갈필로 그린 이 그림은 간결성과 시의는 충분히 표출되었으나 서예에서 익숙해진 필치, 필의와 무관치 않다.
이러한 작품의 경향은 제자나 후세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화제나 필법, 중국의 초막까지도 그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이 서예의 장기를 내세워 단순한 중국의 문인화풍을 수용하고 허한 부분의 여백을 글로 메울 뿐이다.
그것은 묘사력 부족과 창의력이 없는 시대적 배경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시 추사가 처한 입장과 심경을 앞세운다면 앞의 글과 그 어떤 변명으로도 부족하겠지만.
화가·미술사학 박사 황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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