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여야 합의로 내달 임시국회에서 호주제를 폐지키로 함에 따라 기존의 호적제도를 대신할 새 신분등록제도가 어떤 형태로 마련될지가 관심거리다.
국회는 내달 임시국회를 앞두고 호적사무 총괄기관인 대법원과 법무부에 각각 호주제 폐지에 따른 새 신분등록제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법원은 호주제 폐지에 대비해 2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연구·검토해온 내용을 토대로 개인을 기본단위로 하되 가족부 형태를 겸한 혼합형 '1인1적' 제도를 사실상 확정짓고 최종 점검을 거쳐 이달 말께 국회에 제시키로 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법무부는 10일 관련 부처와 변호사, 법대교수 등이 참여하는 신분등록제도 개선위원회를 발족해 2, 3차례의 논의를 거쳐 정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회는 대법원과 법무부 안이 각각 제시되면 내달 중 공청회 등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지은 뒤 임시국회에서 호주제를 폐지하고 새 신분등록법을 제정할 예정이다.
▲신분제도 도입 필요성=호주제가 폐지되면 어떤 사람이 누구와 함께 어디에 사는지를 나타내는 주민등록만 남게 된다.
이럴 경우 재산상속 등과 관련된 소송이 제기됐을 때 가족관계 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혼란이 야기될 수 있어 호적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형태의 신분등록제가 필요하다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주민등록등본은 가구주를 기준으로, 한집에 동거하는 사람의 정보만 공시돼 있어 친족 간 관계를 입증하는 자료로는 사용되지 못한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출생부, 혼인부, 사망부와 가족관계 확인에 필요한 정도의 신분을 기재한 가족수첩 내지 가족대장(가족부)을 별도로 두고 있다.
▲대법원의 신분등록제=대법원이 마련한 새 신분등록제도는 '1인1적'의 가족부에 '목적별 공부식 증명' 방식을 더한 혼합형이다.
즉, 국민마다 하나의 신분등록부로 편성하되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부모, 자녀 등 기본가족에 관한 사항을 포함시켜 사실상 가족부 형태를 유지하지만 신분변동사항은 본인 것만 기록한다.
신분등록등본은 가족사항과 함께 출생, 혼인 이력, 입양관계 등을 모두 기재하고, 발부는 본인과 국가기관만이 할 수 있도록 제한해 개인 신분정보를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신분등록등본은 본인과 배우자의 본적 및 구 호적(호주)을 수록해 한시적으로 유지된다.
대법원은 '목적별 공부식 증명'이라는 유럽식 제도를 도입해 신분등록등본에 나와 있는 여러 사항을 일반, 혼인, 입양증명으로 나눠 각각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서 불필요한 개인정보 노출을 방지하도록 설계했다.
대법원의 개인별 신분등록제는 가족의 해체라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며, 본인 이외 가족의 신분변동사항이 일괄 공시되지 않고 증명서 발급도 쉽지 않아 상속 등 가족 간 법률관계 확정절차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 호적등본과 차이점=호적등본에는 호주를 기준으로 배우자와 부모, 자녀, 형제자매 등 가족 구성원의 결혼, 사망 등 모든 신상정보가 한꺼번에 담겨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신분등록등본에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본인을 기준으로 부모와 배우자, 자녀 등 기본가족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 등 기초정보만 들어가며, 형제자매의 정보는 아예 기재되지 않는다.
신분등록등본을 발급받을 수 있는 주체는 법으로 본인과 국가기관에 한정되기 때문에 본인 외에는 사실상 발급받을 수 없다.
현재 호적등본의 경우 신청사유만 있으면 형제자매 등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보호가 한층 강화된 셈이다.
▲다른 신분등록 방안은=개인단위인 대법원의 신분등록제도 외에 가족별로 하나의 신분등록부를 편제하는 가족부제 등이 검토될 수 있다.
이 방안은 부부 중 한쪽을 기준인으로 정하고 미혼자녀를 구성원으로 한 가(家) 단위로 신분등록부를 만드는 것인데, 일본에서 2차대전 이후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가족들의 신분변동사항을 모두 기재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대법원의 1인1적제와 동일하다.
이 방안은 본인과 가족 간 신분관계 파악이 쉽고, 편제방식이 현행의 호적과 비슷해 축적될 자료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분가·폐가, 일가창립 등 복잡한 호적업무처리의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고, 개인신분정보 보호가 부족할 뿐 아니라 혼외자 차별문제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법무부는 대법원의 개인별 신분등록제도와 함께 이 같은 가족부제도를 함께 검토해 정부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전망=대법원은 이달 중순께 자체 마련한 신분등록제도 방안을 놓고 토론회를 거쳐 사법부 안을 확정, 국회 법사위에 보낸다는 계획이다.
법무부도 신분등록제도 개선위원회를 통해 대법원 안과 함께 가족부 안을 나란히 놓고 검토해 정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회는 두 기관에서 의견이 제시되면 임시국회 전에 공청회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짓고 호주제 폐지를 의결할 예정이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최종안을 토대로 호적법을 대체할 신분등록법을 제정하게 된다.
새 신분등록제도가 시행되면 현 호적부는 '제적부'로서 대법원에서 데이터베이스화해서 보관한다.
신분등록부는 생존해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므로 사망자와의 친족관계 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호적기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무부 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이 대안이 될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대법원이 호적사무를 총괄해왔고, 수년간 대안을 연구한 끝에 개인별 신분등록제도를 내놨다는 점에서 대법원 안의 채택 가능성이 커보인다.
국회는 호주제 폐지 후 새 신분등록제도 시행을 위한 유예기간을 2년으로 잡고 있지만 대법원은 새 제도 도입을 위한 시스템을 정비하고, 현행 호적정보를 옮기는 데 2년 6개월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안의 시행 시점이 어떻게 잡히든 지금의 계획대로라면 2007년 중에는 새 신분등록제도가 효력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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