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짱' 주부 이영미의 요리세상-수정과

달콤+씁쓸=추억의 맛

딸 부잣집의 맏딸인 내게는 '언니'가 있다. 어린 시절 같이 자란 사촌언니이지만 나는 '사촌'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그냥 '우리 언니'일 뿐이다.

흔들리는 시골길, 만원버스 안에 어린 시절의 언니와 내가 있다. 나는 두부가 담긴 양철 밥통 위에 앉아 있고 언니는 내 앞에서 자꾸만 밀려오는 사람들로부터 어린 동생인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의자와 언니 사이에 놓인 밥통 위에 앉아 끙끙대며 힘들어하는 언니를 바라보는 내 얼굴 위로 무엇인가 떨어진다. 언니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이었건만 나는 왜 언니가 울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을까? 언니는 버스가 큰 집이 있는 마을 어귀에 다다를 때까지 그렇게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흘리고 있었다.

"업자."

"왜 업어?"

"큰집까지는 버스 타고 온 만큼 걸어가야 해. 아주 멀어. 그러니까 업혀."

설을 앞두고 어른들보다 하루 먼저 큰집에 가던 길. 나는 언니 등에 업혀 끝이 보이지 않는 시골 벌판을 지나고 있다. 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우리 언니와의 추억이다. 그런 언니에게 소중한 친구가 있단다. 언니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부터 늘 곁에서 힘이 되어 주고 있다는, '피붙이' 같다는 친구. 신문을 보지 않는 언니를 위해 내가 쓴 요리 칼럼을 정성스레 오려 꼬박꼬박 언니에게 가져다준단다.

우리 언니를 생각해주시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같이 점심 한 번 하자 청했더니 도리어 내게 선물을 주셨다. 말랑말랑한 곶감. 형부(이렇게 불러도 되죠?)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곶감을 사줄 정도로 곶감을 좋아한다는 언니(또 이렇게 불러도 되죠?). 곶감을 내게 내미는 모습이 우리 언니와 닮아 가슴이 뭉클했다. 좋은 사람들은 닮는 모양이다. 두 언니의 마음을 듬뿍 느끼기 위해 수정과를 만들었다. 집안 가득한 계피향이 넉넉한 두 언니의 향기 같다. 생강 건더기는 버리지 않고 달콤 쌉싸름한 생강정과를 만들었다. 수정과 한 그릇과 생강정과를 앞에 두고 언니와의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닭발 먹으러 갈 때 꼭 데리고 가겠다던 언니 친구와의 미래의 시간 속으로도.

칼럼니스트'경북여정보고 교사

◇재료=곶감 15개, 통 계피 60g, 생강 100g, 황설탕 1∼2컵, 물 4 (20컵), 잣 조금

◇만들기=①껍질을 벗긴 후 얇게 썬 생강과 통 계피를 끓이다가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하여 1시간 이상 끓인다. ②매운 맛이 충분히 우러나면 생강과 계피는 건져내고 황설탕을 넣고 한 번 더 끓인 뒤 식힌다. ③곶감의 꼭지 부분을 가위로 오려내고 씨를 뺀 뒤 둥글게 모양을 만든 뒤 ②에 담가 5시간 이상 두어 맛이 우러나도록 한다. ④차가워진 수정과에 잣을 띄워 낸다.

◇재료=수정과 국물을 내고 난 얇게 썬 생강, 황설탕 1큰술, 물 1큰술, 물엿 1큰술

◇만들기=냄비에 황설탕, 물, 물엿을 같은 양으로 넣은 뒤 수정과 국물을 만들고 난 생강을 넣고 약한 불에서 조린다. 이 때 젓지 않도록 주의한다. 광택이 나고 색이 갈색을 띠기 시작하면 다 된 것이다. 생강정과에 설탕을 묻혀 서늘한 곳에 말리면 술안주로도 많이 애용이 되고 있는 생강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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