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인터넷 '한글 파괴'

한글이 창제된 지 589돌을 바라보게 됐다, 유네스코는 1997년 한글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구동성으로 지구촌의 언어 가운데 한글이 가장 과학적인 언어라고 했다. 정보화 사회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문자로 높이 평가했다. 일제시대의 국어학자 단체인 조선어연구회가 지정한 '가갸날(당시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의 원조로 친다면 이 날이 제정된 지도 80여 년이나 됐다. 하지만 그 주인인 우리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며 잘 지키고 있는가.

○…한글 순화의 빛깔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제시대에는 그 자체의 명맥 보존이, 광복 직후엔 일본어 잔재 타파와 표준말 정착이 목표였다면, 산업화시대와 더불어 외래어 남용으로부터의 우리말 지키기가 절박한 과제였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이 공간에서의 한글 파괴는 '정체 불명' '국적 불명'의 정황으로까지 치닫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에서 청소년들이 쓰는 언어는 극단적인 암호화'은어화로 물들고 있어 이젠 언어 형태로 보기 어려울 정도다. 축약과 줄임말, 의성어와 의태어, 기호와 숫자, 일본어와 영어 등이 뒤섞여 '외계어'라는 말마저 무색할 지경이다. 언어 폭력'훼손이 위험수위를 넘은 지 이미 오래지만, 청소년들에게 중독 '기호품'으로 확산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터넷을 통해 간결하고 편리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건 나무랄 수만은 없을는지 모른다. 감정을 새로운 감각으로 주고받으며, 청소년들이 갖는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빠른 대화의 길을 튼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글 파괴는 물론 표준말 등 기존 언어 질서를 무너뜨리고, 보편적인 의사소통에 걸림돌들을 놓으며, 세대 간 벽을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결코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뒤늦게나마 인터넷 언어를 순화하고 일상생활의 언어예절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자료집을 발간, 일선 학교에 배포해 특활 시간에 가르치도록 할 모양이다. 고삐를 바짝 잡아당길 필요가 있다, 이미 오염된 성인들에게도 이 바람이 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명실공히 '인터넷 강국'이 되려면 '한글 사랑'으로 우리의 정신과 문화가 계속 상승작용을 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야 하리라.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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