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디카)를 손에 쥔 네티즌의 진화가 눈부시다. 네티즌들은 이제 디지털 카메라를 드라마와 영화에 접목한 '포토드라마'나 '디카놀이' 등 새로운 표현 장르를 만들어가고 있다. 기존의 일반 드라마와 영화와는 다른 발상에서 출발한 그들의 놀이는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좀더 기발한 장면은 없을까"에 관한 끊임없는 고민의 산물이다.
◇디카로 만드는 드라마=도대체 정답이라곤 찾아보긴 힘든 조카의 문제집을 본 삼촌, 조카 가르치기에 나섰다. 조카는 비행기의 '기'로 시작하는 끝말 잇기가 가장 어렵다고 꼽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삼촌이 내놓은 답은 '기원고(출신 고등학교)-고이즈미-미친새'. 최근 인터넷에서 최고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포토드라마 '삼촌과 조카…_- 그 끝없는 전쟁'의 한 장면이다.
'포토드라마'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말풍선 등을 더해 마치 드라마의 스틸컷처럼 보여주는 작품이다. 드라마가 동영상이어야 한다는 발상을 뒤집은 것. 일반 방송 드라마의 ENG 카메라 대신 디지털 카메라를 쓰고 배우는 자신 혼자 등장하거나 주변 인물들을 동원한다.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여기에 포토샵만 조금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지난 연말, 인터넷 펌 사이트 '마이팬(www.myfan.co.kr)'에는 짝 없이 시간을 보내던 외로운 싱글들을 위로하는 포토드라마도 등장해 큰 주목을 받았다. 닉네임 '칼이쓰마'로 알려진 나상혁(23)씨가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한 '크리스마스 솔로부대 생존법 베스트 10'이라는 작품은 '이혼법정 TV시리즈를 감상하자', '거짓말로 크리스마스 기념파티를 해준다며 커플들을 소집시키자', '크고 뾰족한 우박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게 해달라고 빌자', '극도의 인내심으로 24일까지 잠을 안 자고 버틴 후 24일 11시 59분부터 몰아서 잔 다음 26일에 일어나 쾌감을 느끼자' 등 기발한 아이디어에 주인공의 엽기적인 행동을 더해 웃음을 선사했다. 이밖에 '필름이 끊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 '금연에 성공하는 방법' 등도 인기몰이 중이다.
현재 '마이팬'의 베스트 작가 목록에는 17명이 올라와 있다. 이들의 작품은 내놓기만 하면 조회수가 100만 건을 쉽게 넘어선다. 나씨는 모 TV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호기심과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장면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이팬 작가들은 실제 드라마처럼 포토드라마에도 상품간접광고(PPL)를 삽입해 수익을 올리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디카로 만드는 실감나는 액션영화=평범해 보이는 고등학생들이 갑자기 하늘을 날고, 친구를 교실 끝까지 날려버린다. 교실 바닥과 벽, 창문을 지렁이가 기어가듯 꿈틀거리며 넘어간다. 에너지파, 공중부양, 장풍 등 영화 속 특수 장면에서만 가능할 것만 같은 상황들이 연거푸 이어진다. 최근 10대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디카놀이(폰카놀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동영상처럼 보이게 하며 노는 새로운 인터넷 유행 문화.
원리는 간단하다. 동영상이 가능한 사물의 움직임마다 한 장씩 구분해서 촬영한 다음, 그렇게 촬영한 사진들을 컴퓨터에서 이어 붙이면 된다. '픽실레이션'으로 불리며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의 일종이다. 예전 책 귀퉁이에 만화 장면을 한장 한장 그려놓고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 만화영화처럼 보이던 것과 같은 원리. 픽실레이션은 위치가 고정된 카메라로 주인공들을 한 장면씩 움직여가면서 촬영하기 때문에 많은 인내와 집중이 필요하고 완벽한 자세의 조절이 어렵다. 때로는 어려운 동작도 반복해야 한다.
네티즌들은 재기발랄한 이 작품들에 대해 "기발하다", "우리나라의 액션영화계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스토리와 액션 모두 뛰어나다" 는 등 찬사를 보내고 있다. 또 제작방법에 대해 궁금해 하는 네티즌들의 질문도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을 만든 인천의 한 고등학생은 "10년 후에는 반드시 칸 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을 만들 겁니다"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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