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콩꺼풀이여 벗겨지지 말지어다

흰콩꺼풀이든 검정콩꺼풀이든 씻겨지지 말지어다

색맹(色盲)이면 어때 맹맹(盲盲)이면 또 어때

한평생 오늘의 콩꺼풀이 덮인 고대로 살아갈지어다

어떻게 살아도 한평생일진대

불광(不狂)이면 불급(不及)이라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느니

이왕 미쳐서 잘못 본 이대로

변함없이 평생을 잘못 볼지어다

잘못 본 서로를 끝까지 잘못 보며

서로에게 미쳐서[狂]

행복에도 미칠[及] 수 있기를

빌고 빌어주며 예식장을 나왔다.

유안진 '콩꺼풀'에서

새로이 탄생하는 신랑신부에게 축하의 시를 써 보낸다.

눈에 씌인 콩꺼풀이여, 제발 벗겨지지 말지어다.

무지개 찬란한 색으로 덮어씌여진 콩꺼풀이여, 제발 벗겨지지 말지어다.

어쩌다 눈에 씌인 콩꺼풀이 벗겨지려 한다면, 그것은 사랑의 철칙과도 같은 거니까. 얼른 안경이라도 맞추듯이 다시 콩꺼풀을 쓰고 예쁘게 볼지어다.

이 시는 '눈에 콩까풀 씌였다'는 친숙한 우리말에다 요즘 유행하는 '불광불급'이란 한자성어를 더하여 재미와 깊이를 준 생활시로 독자들이 좋아하겠다.

박정남 (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