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00여 년 전 한때 스페인의 수도로 번성기를 누렸던 톨레도는 도시가 형성되던 기원전 200년 무렵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성채도시다. 그러나 유럽의 여러 역사적인 도시들이 대부분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침략과 점령, 식민시대와 독립투쟁의 아픈 역사는 톨레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BC 92년 로마가 쳐들어오기 전까지 톨레도는 까르뻬타노 종족이 지금의 강물에 둘러싸인 높은 언덕 위에 도시 터를 잡았다. 로마군단은 이베르족을 정복한 뒤 도시 이름을 톨레툼이라 짓고 약 500여 년간 통치하면서 오늘날 톨레도라는 이름을 남겼다. 그 뒤 서기 418년 비시고도족이 로마인들을 쫓아내고 비시고도 왕국을 건설하면서 톨레도는 본격적인 성채도시의 번성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비시고도 왕국이 가톨릭을 국교로 정하면서 톨레도는 행정수도의 위상보다는 종교중심도시로서의 명성과 권위를 세워나갔다. 그러나 8세기 이슬람 제국의 침략으로 숱한 가톨릭 유적들은 이슬람화되고 성당은 회교사원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약 1천 년을 로마와 이슬람 제국의 식민지로 고초를 겪었다.
서기 1085년 알폰소 6세가 이슬람을 격파하고 톨레도를 스페인 카스띠아 왕국의 수도를 정한 뒤, 13~15세기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했다. 13세기 알폰소 10세 시대 때 비약적인 발전을 했으나 스페인 반도 안에 있는 모든 유태인들을 추방시키면서 다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톨레도의 경제를 쥐고 있던 유태인의 추방은 경제 쇠퇴를 불렀고, 경제적 몰락은 왕권의 정치기반을 약화시켰다. 결국 1561년 국왕 펠리페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김으로써 톨레도는 사실상 역사의 뒤로 사라졌다.
톨레도가 지금까지 그나마 변함없이 지니고 있는 위상이 있다면 종교이다. 5세기 이후 수많은 종교회의가 열렸고 13세기부터 200여 년 동안 건설된 톨레도 대성당이 스페인의 수석성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나폴레옹 침략과 스페인 내전 때 입은 부분 파손 외에는 중세의 성채도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역사 유적이 오늘날 고도(古都) 톨레도의 명맥을 이어주고 있다.
옛 성곽도시답게 성안 도로는 중세 때 모습 그대로 돌이 깔려 있고 불과 3~4m밖에 안 되는 골목만으로 이어져, 마치 미로를 보는 것 같다. 또 그 골목길은 성당 아니면 옷집, 은제품과 중세 기사들의 갑옷모형, 유리 공예품을 파는 가게와 식당들로 빼곡히 차 있다. 좀 과장하면 성의 구시가는 거대한 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채도시 안의 가장 큰 건축물인 알까사르는 로마시대의 수비대 병영건물로 영화 '엘 시드'로 유명한 엘 시드 장군이 첫 주인이었던 성안 요새다. 알까사르는 18세기 계승전쟁과 나폴레옹 군대의 방화로 몇 차례 불타고 스페인 내전 때 폐허가 됐으나 건축도면을 찾아 재건축한 것이 오늘날 남아 있다.
이처럼 톨레도는 어느 성채도시보다 많은 전쟁을 겪었으나 중세도시 모습을 잘 보존해온 덕분에 오늘날 유럽문명의 가장 값진 유산의 하나로 관광객 등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글·김정길 본사 명예주필
사진·권정호 한국사진기자회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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