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 황금 2동 동사무소 옆에 있는 건축가 김호원씨의 집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했지만 전원 주택같은 멋과 호젓함을 간직하고 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남향(南向)에 동문(東門). 인근의 범어공원을 덤으로 얻었다. 범어공원으로 연결된 꼬불꼬불한 오솔길이 한없이 정답다.
눈으로 즐기는 오솔길이 아니다. 주인은 마실 나갈 때 이 길을 자주 이용한다. 특히 울적할 때면 이리저리 난 오솔길을 따라 산을 하나 넘어 친구집에 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원을 옆에 두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는 주인의 모습이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마당은 있지만 담장은 없는 집이다. 다만 초등학생 키높이 쯤 되는 블라인드를 설치, 경계만 구분했다. 행인들도 아름다운 집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혼자 보기엔 아까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죠" 주인의 열린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신 경비장치를 별도로 구입, 안전에 유의했다.
'담장 허물기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주인은 마당이 넓은 만큼 마음도 넓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주인의 마음에 전염된 걸까. 이웃한 집들도 담장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동사무소에도 담장이 없다.
대문은 미닫이가 아닌 여닫이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주인의 지혜다. 아울러 집안 곳곳을 활용, 자신만의 색깔을 입혔다. 집 안에는 주인이 직접 깎아만든 가구와 원목탁자, 그림들이 나무벽과 친구처럼 잘 어울린다.
방문, 창문 모두가 한옥과 양옥의 중간형태로 현관에서 들어가는 중문의 격자무늬창이나 창문의 세로로 연결되는 창살은 특히 아름답다.
하얀 대리석이 깔린 거실은 마치 흰눈이 내린 것 같다. 다소곳이 거실 귀퉁이를 차지한 반닫이가 투박하면서도 고풍스럽다. 거실의 탁자, 산반, 책상 등은 모두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소박하면서도 주인만의 독특한 취향이 느껴진다.
다실겸 음악감상실에는 원목을 길게 들어놓고 오래된 음향기기와 함께 350여장의 LP판과 CD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음악과 함께 일본, 중국, 한국 차를 모두 마실 수 있어 손님들을 접대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바로 옆방은 서재이자 주인의 창작 공간. 범어공원의 녹음방초가 창 너머로 다가온다. 등받이가 없는 간이 탁자와 잘 어울리는 통나무 형태의 식탁은 집안에서도 '전원속 마찬'이 가능하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150여평 남짓한 마당은 담장이 없어 두 배는 넓게 보인다. 백일홍, 라일락, 능소화, 단풍, 석류, 연산홍, 쥐똥나무, 향나무, 감이 엄청 달린다는 감나무, 테크 위의 앵두나무, 소나무 등이 즐비하다. 한마디로 나무 백화점이다.
특히 화사하고 계절마다 모습이 달라지는 1년초들이 많다. 봄에는 베고니아, 페초니아, 데이지, 이태리 봉숭아, 마가렛 등이 자태를 뽐내고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포인센티아가 행인들을 유혹한다. 낮동안 태양의 정기를 듬뿍 받은 5개의 솔라 등이 밤마다 마당의 주인공인 꽃과 나무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마당 한켠에는 침대처럼 생긴 넓은 평상을 마련, 커피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본체와 연결된 또 다른 테크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어 앵두나무를 심은 모습이 한폭의 그림같다.
삭막한 도심에 생기를 불어넣는 '산소'같은 집이다. 대구에도 이 같은 아름다운 집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사진=박순군 편집위원 tokyo@imaeil.com
★정용의 500자평
대구는 옛날에는 마당 넓은 아름다운 주택들이 삼덕동 그 후에는 대명동, 만촌동, 범어동, 황금동에 많이 있었다. 그러나 1967년 공무원 아파트를 시작으로 편리성만 강조되는 아파트로 너도나도 옮겨 살면서 멋스러운 우리 주택들이 하나 둘 살아져 버렸다. 이런 가운데 담장 없는 마당 있는 집만 고수하며 사는 이가 있으니 건축가 김호원씨의 집이다.
김씨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건축가로 우리 지역에서 소문이 나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안도다다오(安?忠雄)의 노출콘크리트의 방법을 이용하고 대나무로 조경하는 새로운 방법을 대구에 도입해 건축분야에 새로운 장르를 열어놓고 있다. 지금은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노출 콘크리트, 나무, 쇠를 혼합하여 아름다운 집을 짓고 있다.
KBS 옆의 최모씨 집이나 청도 유등의 연꽃마을의 갤러리, 연호동의 도심 전원주택 등이 그의 작품이며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주인의 이런 작품들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건축 여행에서 나온다. 시간만 있으면 소문난 건축물과 새로 시도되는 건축현장을 방문하고 혼자는 물론 건축에 관계되는 교수, 건축사, 건축공무원들과 건축여행을 떠난다. 수없이 방문하는 건축견학(특히 일본)은 젊은 건축가들에게 꿈과 희망을 일구어주기 위함이고, 그렇게 본 것은 새로운 건축의 설계와 건설에 절대적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이란다.
"서울에 한남동이나 평창동처럼 대구에도 존경받는 기업가나 예술가 등이 살았던 아름다운 집들이 훗날까지 이어진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며 늘 안타까워한다.
'아름다운 집'을 만들려는 그의 열정이 끝간데없이 이어지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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