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20일 공개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문서에 나타난 저격범 문세광(당시 23)은 학창시절 때부터 사회주의 사상에 빠진 '골수 빨갱이' 표현되어 있다.
경남 진양이 본적으로 1951년 일본 오사카 히가시스미요시(東住吉)에서 석면제품제조업 종사 집안의 3남으로 태어난 문씨는 일본에서 학업을 마쳤다.
고교 2학년 때 중퇴한 뒤 오사카 재일한국인 거류민단 이쿠노 기타(生野北)지부에 가입한 문씨는 각종 노동일을 하며 생업을 유지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그가 공산주의 사상에 빠진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다.
그는 당시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김일성선집' '모택동어록' 등 각종 공산주의 서적에 심취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의 자본주의 사회구조 및 교포사회의 불만을 해결하는 길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공산주의화되는 길뿐'이라고 생각하는 등 공산주의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이 문서는 전한다.
1972년 조총련에 포섭돼 이듬해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하자 문씨는 김대중 구출대책위원회에 가입, 주오사카 총영사관을 점거해 영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김씨와 교환할 것을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 그의 공범으로 '출연'하는 남한 태생의 조총련 오사카 이쿠노니시(生野西)지부 정치부장 김호룡(47)씨가 등장한다.
1972년 9월 오사카의 한 페스티벌홀에서 개최된 단합대회에서 김씨를 처음 만났고, 이후 김씨는 매월 두 차례씩 문씨 집을 드나들며 각종 선물로 환심을 사면서 북한 관련 자료를 제공해 공산화에 물들게 했다는 것이다.
문씨에게 남편 명의의 가짜 여권을 만들어 준 또 다른 공범으로 지목된 요시이 미키코(24·여)씨는 문씨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비슷한 사상으로 인해 각별한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문서에는 이 두 사람이 한때 장래를 약속하기도 했으나 민족이 달라 따로 결혼했고, 이후 자주 만나 서로의 활동을 격려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73년 11월에는 신분위장 출입국 가능시험과 권총을 구하기 위해 부부로 위장해 홍콩으로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고 전하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 암살기도로 육 여사가 서거해 문씨는 3심제를 거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우리 정부가 지목한 공범 미키코씨는 단순한 여권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1년의 가벼운 선고를 받는 데 그쳤다.
일본 측이 저격사건 자체가 문씨 단독범행이었고 공범문제를 부인했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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