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12월 26일. 경부선 철도가 첫 운행했던 이날 아침,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푸른 눈을 가진 한 이방인이 몸을 실었다. '의류회사 대표'라는 명함을 지녔지만, 이 사람의 정체는 아손 그렙스트라는 이름의 스웨덴 기자였다.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일본에 온 그는 일본 정부가 종군취재를 허용하지 않자 상인으로 위장하고 한국에 들어온 것.
신간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는 그가 1905년 1월 신분이 들통나 추방되기까지 한 달 남짓 한국에 머물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자세히 담고 있다. '스웨덴 장군'이라고 속이고 황태자비(순종의 첫 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고종을 알현했고, 보안회와 일진회가 독립문 앞에서 개최한 정치 집회도 구경하기도 했다. 한 달 남짓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기자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고 들으려고 노력했다. 부산의 일본거리, 하룻밤 머문 대구의 추억과 서울 입성까지 그의 눈에 비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흥미롭다.
이 책의 매력은 100년 전 우리나라를 담은 140여 컷의 놀라운 사진에 있다. 저잣거리에서 물건 파는 사람, 빨래터의 여인들, 한때를 함께 보낸 서울의 기생들, 강화도의 포구…. 특히 민담과 우화에 대해서는 별도로 하나의 장을 할당했을 뿐 아니라 책의 곳곳에서 자신이 들은 일화들을 풍부하게 기록하는 등 당시 우리 조상의 삶을 살갑게 느낄 수 있는 점은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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