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0년대 말 강력히 추진한 종합제철소 건설사업은 이에 회의적인 국제사회의 지원 거부로 중단 위기에 놓였으나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을 활용, 사업의 불씨를 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작가 이대환씨가 쓴 박태준 전 포철(현 포스코) 회장 자서전('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자금 부족으로 제철소 건설 중단 위기에 놓였으나 '대일 청구자금' 1억 달러를 극적으로 확보, 사업을 소생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은 자서전 중 '하와이 구상' 부분의 요약.
박태준은 1969년 1월 31일 포철 1기 건설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 피츠버그를 방문했다.
세계 8개 철강업체로 구성된 대한국제철강차관단(KISA) 대표들을 만나 지원을 호소하기 위한 것. 그러나 KISA의 대표격인 포이 회장은 세계은행(IBRD) 보고서를 인용, 지원 불가 방침을 시사했다.
KISA의 완전한 배신과 세계은행(IBRD)의 명백한 차관 거부 장벽에 직면한 박태준은 귀국길에 하와이에 들러 와이키키 해변을 걸으면서 "1억 달러를 못 구해 이렇게 나가떨어져야 한단 말인가" "일본에나 가서 돈을 구해볼까…"라는 생각을 하던중 '대일청구자금'이 떠올랐다.
박태준은 청와대로 전화해 협상 결과를 기다리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KISA나 IBRD, 수출입은행이 등을 돌리고 있지만 마지막 방법은 있다"며 대일청구자금 전용 가능성을 타진했다.
박 대통령은 "기막힌 아이디어인데 문제는 일본"이라고 지적했다.
박태준은 1969년 2월 12일 도쿄로 날아가 유학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일본의 거물 야스오카 일본철강연맹회장과 이나야마 야하타제철소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8월 22일 일본철강연맹은 이나야마 회장의 주선으로 '한국제철소건설협력위원회'를 구성하게 됐다.
한편 청와대의 김학렬 경제수석비서관도 당초 대일청구권 자금 전용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KISA차관이 물건너갔다고 판단해 8천 달러쯤 남아 있던 대일청구권을 "즉시 동결하라"고 경제수석에게 지시, 대일청구자금 전용이 가능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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