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렇지 않아도 몰매를 맞고 있는 터에 매도에 가담해야 한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기아차 광주공장 생산직 채용비리 건이다. 회사의 비리를 감시해야 할 노조 간부가 많은 돈을 받고 신입사원 채용을 회사측에 추천하는 '취업 장사'를 했다는 점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비리의 뿌리를 캐면 캘수록 이번 사건은 브로커까지 개입한 '조직적·구조적' 채용비리로 드러나고 있다. 노조간부 뿐 아니라 회사 직원도 연루됐고 유력 인사들의 취업 청탁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노조만 비난의 대상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모든 언론은 노조의 부도덕성만 강조하며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화간(和姦)'인데도 꼬드긴 남자(자본)는 그냥 두고 꾐에 넘어간 여자(노동)에게만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취업 장사'를 한 노조를 두둔할 생각도 없다. 모든 이들이 나서 '권력화'한 대기업 노조의 도덕 불감증을 매몰차게 나무라고 있으니 이것도 그만두자. 이번 사건의 본질은 영악한 자본의 회유책에 일부 부도덕한 노동이 장단을 맞춰 바람을 피운 것에 불과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렇게 정리한다고 남는 문제는 없을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본과 노동의 야합은 우리 경제의 이중구조와 양극화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현격한 임금격차가 이번 기아차 광주공장 채용비리의 근본 원인이다.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은 정규직의 50% 수준에 불과하다. 시간제 파견근로자는 41%로 더 낮았다. 반면 유럽연합(EU) 국가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70~80% 수준이다. 더욱이 유럽연합 국가들은 우리보다 사회보장 등 사회안전망이 훨씬 잘 갖춰져 있다. 우리 비정규직의 처우가 얼마나 열악한 지 대비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한국조세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종업원 500명 이상)의 평균 임금 대비 중소기업(10~29명)의 평균 임금은 1993년 86.2%였으나 외환위기 이후인 2002년에는 76.8%로 크게 낮아졌다. 이러한 기업 규모간 임금 격차가 청년실업 악화와 중소기업 구인난의 주요 원인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따라서 연봉이 많고 고용이 안정적인데다 '상대적으로' 취업 문턱이 낮은 대기업 생산직은 취업 예비군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다. 게다가 '강력한 노조'의 보호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취업 포털사이트의 조사에서도 대졸자 5명 중 4명은 생산직이라도 대기업이면 입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니 '웃돈'을 주고서라도 대기업 생산직으로 입사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기아차 채용비리도 이러한 양극화가 낳은 사생아인 셈이다.
노동시장에서 언제나 열세인 노동자들이 집단적 협상을 통하여 자본과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조직한 것이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 내의 이질성이 증가하면서 노조가 집단적 힘을 발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공세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가속화한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급증한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 내에 집단주의 문화가 퇴색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현대차 노조 사무실에서 분신을 기도하며 대기업 노조의 관심을 촉구한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됐다. 그는 "숫자가 많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제발 연대 좀 해달라."고 호소했다.
아무튼 이번 기아차 노조의 회사측과의 야합은 어떠한 이유를 대던 변명의 여지가 없다. 어떤 비판과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야합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면 노동운동의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사회적 양극화와 고통의 핵심인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들의 아픔을 나누는데 대기업 노조가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운동을 전개해 실업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방안도 강구해볼 것을 권한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조영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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