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더 이상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경주는 우리나라 역사 1번지이다.
경주시민은 물론 국민, 정부 모두가 천년고도의 정신과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경주다운 경주
시민들과 전문가들은 굵직한 국책사업 유치도 좋지만 '경주다운 경주'부터 만드는 것이 오늘의 난관을 푸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동국대 관광산업연구소가 지난해 경주시민 531명을 대상으로 시민 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0.4%가 경주가 역사문화도시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문화유산이 제대로 관리가 안 돼 방치, 훼손되고 있다(41.8%)고 했다.
또 문화유산도시 조성이 낙후된 관광 및 지역경제를 살리는 지름길(57.4%)이며, 이를 위해 인력, 예산, 제도 지원 등 중앙정부의 관심(77.8%)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주의 가장 큰 자산은 '역사문화'이며 곧 경주의 해법이라는 것.
각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문화부 태스크포스팀과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은 지난해 말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 3월쯤 최종 보고회를 가질 예정이다.
역사문화도시 조성은 2003년 8월 대통령 지시로 광주의 문화수도, 부산의 영상도시 등과 함께 추진 중인 국책사업.
기본계획안은 △문화유적과 도시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고도 조성 △문화유적의 발굴·정비·복원 △한옥마을과 문화거리 조성 등 특화된 관광자원과 상품 개발 △고속철 시대에 걸맞은 역사문화도시 기반시설 확충 등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경주 역사문화도시 추진단 송운석 팀장은 "사업은 문화재 보존, 지역 개발, 관광객 유치 등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야심작"이라고 말했다.
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2034년까지 30년간 3조 2천798억 원을 투입해 1단계(2005~2009) 기반 조성 및 단기사업 추진, 2단계(2010~2014) 기본 인프라 구축, 3단계(2015~2024) 역사문화도시 완성 4단계(2025~2034) 국제 위상 확보 등의 4단계로 추진된다.
또 추진 주체로 가칭 경주관리공단을 설립하는 방안이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송 팀장은 "사업 추진에는 이견이 없으나 사업 규모 및 시기, 예산 규모가 관건이다.
정부 예산부처에서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예산을 반영하느냐에 사업의 운명이 달려 있다"며 "국가재정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에 의한 국가균형특별회계를 사업예산에 적극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계획대로라면 환영이지만 찔끔찔끔 예산에다 계획된 예산도 제대로 안 나오는 도심 정비사업의 선례를 답습한다면 역사문화도시 조성 사업은 공염불에 그친다"며 "정부 부처 간 협조는 물론 나아가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문화부 태스크포스팀도 도심 문화재보호구역 내 사유지 12개 지역에 대해 예산 5천800억 원을 집중 투입하는 문제를 사업의 선결과제로 꼽고 있다.
또 기존의 개별 사업 단위별 소액예산 투입 방식을 지양하고, 총괄적인 필요 예산을 조기에 확보, 집중 투입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은 기본계획안을 통해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과 함께 시민들의 단기적 기대효과로 인한 조급증 탈피 및 통일된 시각, 국민의 이해, 선진국 벤치마킹 등이 일치될 때 계획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선진국을 벤치마킹하자
천년고도는 유적, 유물로 넘쳐난다.
하지만, 개별 문화재 보호 등에 치중하는 문화재보호법에 막혀 새로운 관광자원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웨어(관광자원 및 상품)는 없고, 하드웨어(유물 유적)만 있을 뿐이다.
하드에 소프트를 가미하는 시너지가 필요하다는 것.
유럽, 일본 역사도시들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드웨어만으로는 한계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초대 독일 황제가 묻힌 곳으로 유명한 퀘틀링부르크는 이 같은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발했다.
박물관의 밤(5월), 황제의 봄 축제(5월), 여름음악축제(6~9월), 열린 문화재의 날(9월), 연례 정기전시회(9월), 안뜰에서의 강림절(12월) 등 연중 내내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다.
1회성이 아닌 해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전통 축제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도 호헨 짤츠부르크성과 레지던스궁 같은 유적을 학술세미나, 공연장, 연회장 등으로 활용해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 '사운드 오브 뮤직 마케팅'을 수립해 미라벨궁, 리틀 썸머 하우스 등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유적들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했으며 25곳의 유적지와 음악공연 관람, 대중교통, 호텔 숙박과 식사를 단 한 장의 카드로 이용할 수 있는 전자결제시스템도 구축했다.
이탈리아 피렌체 경우 중세시대 푸줏간거리로 내버려졌던 베키오다리를 세계적 금은세공점 거리로 탈바꿈시켰다.
베니스, 베로나 등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도 고대 원형경기장을 오페라 극장으로 조성해 매년 오페라축제를 열고 있으며 셰익스피어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지를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한가지는 유적지원제도. 매장문화재 발굴과 정보화에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선진 역사도시들은 제한적 지원에다 문화재 정보 시스템이 전무한 '경주'와는 시작부터 달랐던 것이다.
유럽의 경우,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기술자문 및 복원비용을 지원한다.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아래 조시는 로마시대에서 르네상스까지 모든 유적을 대상으로 건축 복원 비용의 40%를 부담하고 있으며 유적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1천여 채에 이르는 건축물의 현재 상태와 역사적 배경을 데이터베이스화 했다.
일본 교토시도 1972년부터 '교토시 시가지 경관조례'를 제정해 산네자카, 기온신바시, 후시미 등의 역사경관 정비를 지원하고 있다.
선직국 역사도시의 또 다른 특징은 유적 보존과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신시가지 개발이다.
유럽의 성공적 역사도시 경우 문화재와 유적이 분포하는 구도심에 관광상품과 교통시설 중심의 신시가지를 구분 경영하고 있다.
일본 가마쿠라시도 정부의 '고도 역사 보전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문화재 거점과 별도로 첨단 도시경관을 형성하는 후카자와 신도시 거점을 건설하고 있다.
동국대 관광학과 박종희 교수는 "경주는 세계에서도 손색없는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생명력을 불어넣지 못하고 있다"며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 못지 않게 다양한 관광자원과 상품을 개발해 내외국인들에게 알리는 것이 경주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고 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경주 박정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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