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뿌린 지난 25일, 대구중앙도서관 독서회 회원들은 참으로 흥취 있는 문학기행을 떠났다. 며칠 전 많은 눈이 내려 산야가 순백색으로 뒤덮인 경북 영양 일원. 회원들은 시인 오일도, 조지훈의 생가?거쳐 소설가 이문열씨의 자택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생부터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대한 관심과 질문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이씨는 가장 쉬운 언어와 표현으로 이들의 질문에 답했다. 독서와 글쓰기의 기본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간추려 소개한다.
▲글을 잘 쓰려면
구양수의 삼다(三多)를 흔히 이야기한다. 중요하지만 혼자서 하기엔 쉽지 않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가운데 쓰기(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고 원칙이 섰을 때 가능한 일이다. 생각을 한다는 것(商量)은 하나의 주제와 관념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명상과 사색을 가리키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대단한 정신적 수양이다. 보통 생각을 하게 되면 5분도 안 돼 망상이나 잡념이 된다. 준비하고 단련돼야 하는 기술이다.
가장 쉽게 이를 겸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읽는 것이다. 작가의 생각을 소극적'피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작가와 대화하며 읽어야 한다. 작가가 제시한 문제를 작가와 함께 생각(商量)하고, 말의 짜임새나 구성을 유심히 살피며 읽으면 쓰는(作) 연습도 된다. 독서는 일방적인 지식습득과정이 아니라 활용하기에 따라 생각과 짓기 연습이 아울러 되는 것이다.
▲정독과 다독의 장·단점은
요즘 컴퓨터와 인터넷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정독과 다독의 개념도 새롭게 정리돼야 할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지식의 위치를 기억하는 데 힘을 쏟았다. 예컨대 논어를 읽기 전에 한글로 번역된 책을 먼저 읽는다. 원문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려면 일 년도 더 걸리겠지만 번역서는 3일이면 충분히 읽는다. 두세 번 읽고, 다른 종류의 책도 구해 읽으면 논어가 무엇에 관한 책이고 어디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이것도 문화 생산의 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식의 위치를 컴퓨터나 인터넷이 다 알려주므로 이런 식의 읽기는 필요성이 떨어졌다. 지식과 정보를 단순히 찾고 연결하는 게 아니라 이를 조직하고 구성하고 창조하는 것이 문화 생산인 듯하다. 따라서 책은 자기가 참으로 읽고 싶고, 깊이 이해하고 싶은 것을 힘써 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해 다독의 의미보다 정독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의 구분은
단순히 얘기하자면 내용을 인용했을 때 자기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고, 남들이 인정하면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온 지 오래 됐는데 계속 발간된다면 이 역시 좋은 책의 범주에 포함된다.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는 책을 고를 때 참고 사항은 되겠지만 꼭 읽어야 할 책은 아닐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내 청소년기는 책과 친해지는 과정이었다. 재미와 감동, 감수성에 호소하는 책을 많이 읽었다. 헤르만 헤세나 앙드레 지드 등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점차 철학이나 관념 쪽으로 읽기가 올라갔다. 유명한 책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너무 어렵고 딱딱한 책을 읽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작품 가운데 아끼는 것은
대답하기 고약한 질문이다. 아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작가로서 욕심을 부린다면 가장 마지막에 쓴 작품이어야 할 것이다. 문학적 발전이 지속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써 놓고 만족한 작품을 들라면 초기에는 '황제를 위하여', 중기에는 '시인'을 꼽을 수 있다. 최근에 쓴 것으로는 '아가'를 권하고 싶다. 50대의 나이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다. 이런저런 시비에 휘말렸지만 한 사회학자가 논문으로 쓴 걸 보고 감동받았다. 비평가들보다 더 열심히 읽은 것 같았다.
▲인터넷 소설의 성행에 대한 평가는
처음 인터넷 소설을 접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전통적인 소설 문법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파괴돼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어떤 문화든 초창기에는 혼란스럽지만 세월이 가면서 안정된다.
서구에서 금속활자가 발명됐을 때 처음 찍은 것이 성경이었다. 모두들 가치 있고 성스러운 책이 값싼 종이에 찍혀 싸게 배포되니 큰일 났다고 떠들어댔다. 성경이 이렇게 마구 찍힐 정도니 음서나 잡서들이 판을 칠 거라는 이유였다. 실제로 초기에는 그런 경향도 있었지만 50년도 안 돼 중요한 문서들이 금속활자에 의해 배포됐다.
인터넷 소설도 점차 정화 과정을 거쳐 2, 3년 혹은 10년 내로는 문법적 소설처럼 진지한 사고와 정신들이 인정받을 것이다. 이를 얼마나 앞당기느냐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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