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삼국유사, 800년만에 '유럽 나들이'

아마도 삼국유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삼국유사의 저자가 13세기 고려시대 일연 스님이라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이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의 천년고찰 인각사라는 것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기억하는 일.

그러나 이렇게 유명한 삼국유사가 800년 만에 유럽 나들이에 나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은 듯하다. 오는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2005 독일 국제 도서박람회'에 한국을 대표하는 책의 하나로 출품되는 것. 이를 위해 현재 독일 현지에서 한국 출신 여교수와 독일인 교수가 삼국유사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수개월째 매달려 있기도 하다.

이 같은 깜짝 놀란 만한 작업을 총괄하는 곳이 바로 인각사. 신라 선덕여왕 11년(서기 64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 유서깊은 고찰도 화북댐 건설 추진으로 하마터면 물 속에 잠길 뻔한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화북댐이 인각사 위쪽에 건설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면서 수장의 위기는 넘겼다.

삼국유사의 도서박람회 출품 및 독일어 번역작업 추진은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됐다. 2000년 주지로 새로 부임한 상인 스님이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각사 및 일연 스님에 대한 재조명작업에 몰두, 일(?)을 벌이기 시작한 것.

상인 스님은 이듬해부터 삼국유사 문화제를 개최하면서 일연학 연구원을 만들었다. 2003년에는 수 천만 원을 들여 삼국유사 영인본 100질(1·2권)을 출판, 전국적으로 책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앞으로는 인각사 경내에 일연 스님 자료관 건립도 계획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마침 김영자(김 베커스) 교수와 인연이 맺어지면서 '삼국유사의 세계화' 작업도 이뤄지게 됐다. 1960년대 유학갔다 독일에 정착, 레겐스부르크대학에서 한국어문화과를 맡고 있던 김 교수는 2003년 인각사를 방문, 상인 스님, 이의근 경북도지사 등을 만나 번역과 박람회 출품 등을 협의하게 된 것.

올해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2005 국제 도서박람회'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한·독 정상을 비롯한 독일 교육부장관과 헤센주 수상, 한국 국회의원, 출판·언론계 인사 등 한·독 관계자가 참가하는 가운데 세계 170여 개 국 도서가 출품된다.

그러나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초 독일 도서박람회에 한국에서 출품할 도서 100선에 삼국유사가 포함되지 않았던 것. 상인 스님이 정부 관계자와 이의근 지사 등 각계에 도움을 호소한 끝에 출품은 어렵게 결정됐지만 번역에 필요한 경비 마련은 '산 넘어 산'이었다. 상인 스님이 정부와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 등을 수없이 찾아다니며 설득작업을 벌여 겨우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모았다.

번역은 김 교수와 함께 경상도 출신 한국인을 부인으로 맞이한 것으로 알려진 뮌헨 시한대학의 라이너 짐머만(Rainer Zimmermann) 교수가 공동으로 맡아 오는 3월 완료할 예정이다.

상인 스님은 "도서박람회 기간 중 현지에서 열릴 삼국유사 독일어판 번역 출판기념회 및 전시회에 국내 조계종, 군위군 관계자들도 참석할 계획"이라며 "경북도와 군위군에 산재한 불교문화유적을 세계에 널리 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인 스님은 특히 "유럽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 속에 한국이 포함된 것으로 오해받고 있다"며 "한국이 역사와 문화가 독립된 나라임을 유럽사회에 공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각사 경내에 있는 '보각국사 정조지탑'에 얽힌 이야기도 절을 찾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보각국사 일연 스님이 노년에 인각사에서 노모를 지극히 봉양하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등 업적을 남긴 것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이 탑은 아침에 해가 뜨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않은 곳의 노모 묘를 비췄다는 것. 또 원래 이 탑이 인각사 동쪽 2km 떨어진 부도골에 있었으나 외지 사람들이 자기 조상의 묘를 안장하기 위해 1928년 서편으로 50m쯤 옮겨 놓은 것을 1978년에 현재 자리로 다시 옮겼다.

군위·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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