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 도자기에 이끌려 경상도에 왔어요"

◆ 한국 도자기에서 강한 느낌을 받아요

"옛날 조선도자기들을 보면 강한 느낌이 옵니다. 그 느낌을 제 작업의 중심에 넣고 싶어서 스승의 곁을 떠나 한국으로 왔습니다."

일본의 아이치현(愛智縣)의 명도공 코이에 료오지의 수제자로 촉망받던 아키야마 준이 조선 도자기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 생명력에 이끌려 한국으로 날아왔다. 그곳에서 도자기를 공부하던 대구 여성(김현아씨)를 만나 대구 향교에서 혼례도 올렸다. 경남 창녕에 둥지를 틀었다.

"경북 청도에 가고 싶었지만 집값이 너무 비쌌어요. 시골집값은 일본이 더 싼 것 같아요." 어느 문중 기와집에 세들어 집앞 허드렛 건물을 밀고 흙구릉을 만들어 가마를 앉혔다. 편리하고 실패율이 적은 가스가마 대신 3칸짜리 전통 오름식 장작가마를 지었다.

◆ 가마안을 휘감는 불길, 너무 아름다워요

2월10일부터 15일까지 서울 통인갤러리에서 갖게될 초대전에 다완, 다관, 다기, 항아리, 주전자 등 차도구 150점을 출품하게 될 아키야마 준은 지난 금요일(28일) 에도 가마에 불을 때며 날밤을 샜다. 급하게 불을 때면 기물이 터지고, 한참 불이 올라갈 때 온도를 쭉 올려주지 않으면 그릇은 익다가 만다. 나무를 때면서 굴의 온도를 예민하게 유지해야하는 장작가마는 그만큼 힘과 든다.

처음에는 아궁이에 십자가처럼 차곡차곡 나무를 넣으며 불길을 조절하지만 나중에는 장작이 더이상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봉통(아궁이)이 숯으로 꽉 찬다. 그때는 장작으로 숯을 밀어넣으면서 불길을 조절한다. "불이 구덕을 타고 휘익 넘어가는 움직임이 너무 예쁩니다." 준은 춤추는 불길에 혼을 뺏긴다.어쩌면 준의 작가정신이 저 꽃불에 녹아들어 조화를 이루면 언젠가 세상에 남길만한 작품 도자기도 나오겠지.

◆ 석달에 두번 가마에 불올리는 뜨거운 정열

준은 옛 조선여인들이 가마솥에 불을 때면서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날려버렸듯이 그렇게 가마에 장작불을 올리며 힘겨움을 잊고 도자기를 시작할 때의 첫마음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수천, 수백년간 흙과 함께 살다간 도공들의 혼을 생각하고, 한일 양나라에서 말없이 자기길을 걸어갔던 도자기 선조들의 자기수양을 엄격하게 따른다.

그의 작업량은 엄청나다. 무려 일년에 여덟번이나 가마에 불을 지핀다. 보통 한가마에 1천점 내외의 기물이 들어가니 무려 8천점 이상 작업을 하는 셈이다. 일년 365일 하루 20~30점씩 작품을 만드는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아직 젊기 때문에 도자기의 새로운 발견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죽을때까지 정진해서, 여태 본적이 없는 명물 도자기 한점이라도 남기고 싶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자각과 노력이 만사성공의 원천이라고 설파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키야마 준은 현해탄을 넘어 경상도 한구석에서 불멸의 도공으로 남긴 위한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 생활비 벌러 갔다가 첫 초대전 갖게 돼

가정과 스승에서 독립한 뒤로 곤궁한 날의 연속이지만 아키야마 준은 이런 시련을 그리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전시회를 앞두고, 정신을 모으기 위해 머리를 밀고 마츠리에 나오는 일본 청년들처럼 수건으로 동여매었다. 생활이 궁핍하지만 쉽게 돈을 벌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받아주는 대구의 유명한 전통 도자상이 "너무 싸다. 값을 좀 올리자"고 해도 "아직 배우는 단계"라며 거절한다. 그러기에, 한 가마를 다 팔아도 재료 구하고, 생활하기가 빠듯하다. 나무를 때고 김치를 주로 먹는데도 얼마전에 생활비가 떨어졌다.

"할 수 없이 한가방 짊어지고 갔더니 화랑주인이 흔쾌히 사주면서 이번 작품전까지 열어주네요." 자신이 구운 도자기를 들고 다니는 그에게서 옛날 조선 도공들의 순수함이 느껴진다. "긴장하면서 특별나게 뭘 만들까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냥 여태까지 만들던 대로 편하게 작업했어요."

◆ 엄동설한 작업으로 갈라터진 손등

어떤 그릇을 만들겠다는 의식없이 흙이 갖는 특성 그대로 흙의 성질에 맞는 그릇을 무심한 상태에서 만들겠다는 아키야마 준의 손등은 심하게 갈라터져 피가 맺혀 있다. 수세미처럼 거칠어지고 굵다란 뼈만 남은 마더 데레사의 손이 인도의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 성인의 삶을 보여주었듯이, 준의 갈라터진 손등은 엄동설한에도 중단되지 않는 도공의 길을 웅변해준다.

"제 아내와 가마와 공간이 경상도에 다 있으니 너무 좋아요. 내 작품의 중심은 여기입니다.".

대가인 스승의 뒤를 따라 그런 도자기를 구워내면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독립해서 내 도자기를 굽고 싶어서 날아온 한국땅에서 그는 병까지 얻었다. 전시회가 끝나면 종합검진을 받는다. 그러나 티내지 않고 언제나 신선하게 웃으며 경상도 아내와 장난을 즐기는 신세대 도공이다.

◆ 볏짚, 콩깎지 소나무재로 유약 만들어

분청에 죽고, 분청에 사는 일본 청년 아키야마 준은 황토에 볏짚, 복숭아나뭇가지, 콩깎지, 소나무재 등으로 유약을 직접 만들어 쓴다. 손이 조금 빌때는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흙을 캐고, 추수뒤 마을에서 콩깎지를 실어오고 가마를 손보고 어느 하루 빈날이 없다. 청년때 즐기던 윈드서핑도 그만둔지 오래다.

"한국은 가족간, 마을사람간, 식구간 정이 있어서 너무 인상적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아키야마 준이 무명의 조선도공이 무심결에 빚어낸 막사발이 일본국보가 돼버린 키자에몬 이도를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지 저 겨울 하늘은 지켜보고 있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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