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첨성대를 허물어 버려?'

"첨성대를 헐어버려야 정신을 차릴거냐."

태권도 공원 유치가 좌절된 28만 경주시민들의 분노가 연일 들끓는 가운데 일부 젊은층들이 울분을 이기지 못해 터트렸다는 극언이다.

기왓장 조각 하나만 출토돼도 집수리부터 텃밭가는 것까지 다 포기해가며 수십년을 고통스레 살아온 천년고도의 텃주인이 오죽 억장이 무너졌으면 그런 혹독한 말을 했을까 하는 이해가 앞선다.

젊은 혈기에 마음에도 없는 막말을 울컥 뱉었지만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어른들의 힐책에 '첨성대는 헐어도 다시 돌을 그대로 쌓으면 안다치지 않느냐'고 했다는 순박한 대답속에서 경주시민들의 멍든 가슴 저 밑바닥에는 사유재산이 제한되는 고통속에서도 천년고도의 문화유산을 온전히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부심이 숨쉬고 있음을 보게된다.

아쨌든 첨성대라도 헐어서 '정치적 흥정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란 오해를 빚고 있는 참여정부를 정신을 차리게 만들자는 항변이 나올만큼 지금 경주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속내 모르는 서울이나 충청도 경남쪽 사람들이야 '공원하나 유치 해보려다가 탈락되더니 잠시 흥분하는 것' 쯤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이번 태권도 공원문제는 누가봐도 '정치흥정'시비가 나올 만하다는 심증이 가는 사안이다.

시비의 초점은 첫 심사때 1위로 가뿐하게 판정된 경주가 두번째 2단계 심사에서 4개 심사항목 중 3개 항목 모두에 무주쪽으로 몰 점수가 주어지면서 경주를 제치고 역전된 데 있다.

석굴암의 금강역사(力士) 조각상이 태권도 품세를 상징하고 있고 전통권법무예를 익힌 화랑도 발원지인 경주가 '태권도의 역사적 배경과 상징성 부여 가능성' 심사항목과 '태권도 성지 또는 수련장으로서의 이미지 적합성'항목 등에서 무주보다 무려 3.2점이나 뒤떨어진 것으로 평점된건 수긍이 가지 않는다. 경주시민이 더 열을 받는 이유는 '태권도 공원 조성을 위한 지자체의 개발의지'항목과 '지역 주민 단체 등의 호응도' 평점 등에서 무주보다 3.46점이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점이다.

12년전 시작됐던 경마장 유치 사업에서부터 지난해 가을의 카지노 유치, 축구센터 유치등에서 줄줄이 헛물만 켜게 만들 동안 28만 경주 시민과 지역단체'공무원들이 태권공원만은…하는 마지막 희망에 그 얼마나 간절한 개발의지와 뜨거운 흐응도를 불태워 왔겠는가. 예산자료를 봐도 그동안 어려운 시재정에 딴살림을 줄여가며 수억원의 유치홍보예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면서 개발의지를 다져온 열의가 엿보인다 그럼에도 다른 이유도 아닌 '개발의지가 부족'하고 '주민 호응도가 모자랐다'며 1차평점을 뒤집어 버렸으니 동냥은 고사하고 시민 자존심까지 쪽박깨듯 한데 대한 울분이 터져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진정한 묘미는 민심을 점수나 심사기준 같은 법제적 틀속에 집어넣어 다루는 치민(治民)보다는 제민(齊民)의 손길로 추스를줄 아는데 있다.

경주의 백성들이 잇따른 국책사업 유치 좌절 뿐아니라 문화재 보전과 관련된 갖가지 치민형(治民型) 법령들에 의해 유적지 안에 사는 죄로 이런저런 제약 속에 힘겹게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고난을 제민의 손길로 살펴줘야 한다. 경주와 밀접한 정부기관인 문화재청만하더라도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인정한 경주의 문화재와 경주시민의 삶의 질 문제를 조화롭게 진단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처방을 내리는 일에 진력해야 옳다. 개혁정부라면 고도 경주를 무주와 함께 그저 작은 지방 도시의 개념으로 살필게 아니라 법령을 뛰어 넘는 문화적 안목과 개혁적 눈높이로 접근 할 필요가 있다.

80%의 국민들이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운동권 출신의 문화재 책임자가 멀쩡한 현판이나 뜯어내는데 정신을 팔고 있는 한 경주는 하루하루 인적 끊겨가는 무덤과 탑만 남은 유령같은 고도가 돼가지말란 법이 없다. 개혁 세력 집권 이전의 모든 과거는 다 싫고 내표 덜찍어준 꼴통백성과 '그때 그 사람들'은 다 밉고 보수들이 만든 것은 글씨까지도 깎아내고 뜯어내고 지워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문화혁명식 광기앞에서는 문화유적, 문화도시도 푸대접받게 돼 있다.

경주시민 여러분은 아셔야 한다.

경부선 철로도 일제가 깔아 놓은건데 그건 왜 일제 잔재라며 걷어내자고 안하는지 궁금해질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정말 첨성대를 허문다고 해도 눈도 깜짝 안할 수도 있다는 것을-.

따라서 끝까지 평화적이고 문화시민다운 투쟁과 인내로 지역발전의 꿈을 이뤄내셔야 한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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