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맛있다."
지난달 29일 대구시 만촌동 김기희씨(경동정보대 식음료조리과 교수)의 집. 이곳에선 벌써 설 분위기가 완연했다. 강정, 마른 구절판 등 설 음식을 미리 준비하는 주부들 사이에 외국인 여성도 둘 끼었다. 영국인 로라 본(24), 캐나다인 테레사 로우저(26)씨. 대구에서 영어강사 생활을 한 지 1년이 넘었지만 한국 가정에서 명절을 느껴보는 건 처음이라며 이들은 한껏 들떠 있는 분위기였다.
"곶감 끝 부분을 이렇게 4등분 하면 5조각이 나죠. 끝 부분을 꼬아서 잣을 붙이면 부채 모양이 되요.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은 홀수로 맞추기 때문에 짝수인 4, 6조각은 안 하는 거예요."
◇ 외국엔 전통있는 명절 없어
만드는 요령을 알려주는 김 교수의 설명을 듣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자못 진지했다. "영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마른 곶감은 먹지 않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랜 관습이죠. 그런데 곶감이 더 달고 맛있는 것 같아요."
곶감에 잣을 꽂아 부채모양을 만들면서 맛을 보던 두 사람은 어설픈 한국말로 "맛있다"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거의 매일 한국 음식을 먹어요. 참치찌개, 뚝배기 해장국, 비빔밥, 볶음밥, 수제비…. 전부 맛있어요."
이들은 맵고 자극적인 한국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고 했다. 맵고 신 김치도 아주 맛있게 먹는 이들은 떡 볶기가 처음엔 이상해 보였지만 지금은 잘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번데기는 싫어요. 보신탕도…. 개를 때리면 살이 부드러워진다고 하던데 너무 싫어요."
로라의 얘기를 듣고 있던 테레사는 의외로 "보신탕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보신탕이라는 말만 하지 않고 누군가 음식을 내온다면 맛있게 먹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정월 초에 먹는 떡국은 한 해의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옛날에는 가래떡을 동전처럼 동그랗게 썰어 돈을 많이 벌기를 기원하기도 했답니다." 함께 음식을 만드는 주부들의 정감 어린 설명을 들으며 로라와 테레사는 연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 한국음식 잘 먹지만 보신탕은 아직…
"영국이나 캐나다에서는 한국의 설처럼 오랜 전통이 담겨있는 명절이 별로 없어요. 크리스마스 때는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지만, 새해를 맞이할 때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거든요."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다고 말한 이들은 윷놀이 등을 하며 온 가족이 함께 설을 보내는 한국의 전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실크는 비싸, 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 고급스런 옷감으로 만든 한복은 너무 예쁜 것 같아요."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두 사람은 긴 치맛자락을 감당 못 해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젊은 한국 여성들도 한복을 입는 것을 불편해 하기도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 부분이 조여 불편하지만 임신복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 이렇게 오랜 기간 외국에 있기는 처음이에요. 일본에도 갈 수 있었지만 한국, 그중에서도 대구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서울보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팔공산도 너무 아름다워요."
영국 뉴캐슬에 있을 때부터 지압'침 등 동양의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로라는 같은 학원에서 일하는 대구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다. 하지만 "아주 전형적인 대구 남자 스타일로 로맨틱하지 않다"라며 웃음 지었다.
◇ "한복은 임신복으로 좋겠네요"
역시 "서울보다는 대구가 좋다"고 말한 테레사는 "나이가 드신 분들도 기본적인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영어로 듣고 말하는 것에 너무 놀랐다"고 했다. 또 한국의 아이들이 자기네와 달리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에도 놀랐다고.
"원어민 강사에게 아이들의 영어 교육을 맡기는 가정들이 많은데 명절에 그들을 집으로 초대해 한국의 전통을 체험할 기회를 가지도록 하고 한국을 알리면 민간외교 차원에서도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어요." 일본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설경은(47)씨는 "한국의 설 풍속에 대해 외국인들은 신기해하고 체험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면서 "올 설엔 가까운 외국인을 가정에 초대해 같이 즐겨 볼 것"을 권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사진: 윷놀이를 배우며 즐거워 하는 캐나다인 테레사 로우저(오른쪽), 영국인 로라 본씨. 친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고향과 달리 온 가족이 함께 설을 보내는 한국의 전통이 보기 좋다고 말한다. 정우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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