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는 극장 무대에 강아지 한 마리만 올려놓아도 대성황을 이룬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명절 연휴는 극장가에서 가장 큰 '대목'이다.
이번 설 연휴에도 기막힌 영화들이 여럿 대기 중이다.
이번 설 연휴에 극장가를 뜨겁게 달굴 신작 영화 8편을 소개한다.
◇말아톤(정윤철 감독/조승우·김미숙 주연/115분/전체)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겉보기엔 또래 아이들과 다른 것 하나 없는 초원. 하지만 초원이는 자폐증 진단을 받게 되고, 엄마 경숙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한다.
그러나 경숙은 초원이가 달리기만큼은 정상인보다도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인간한계인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다.
보는 이의 마음을 정화하는 아름다운 영상과 드라마가 볼 만하다.
스무 살 청년이지만 정신연령이 다섯 살인 한 자폐아의 눈을 통해 보는 이 세상은 여전히 희망적임을 느끼게 해준다.
조승우의 천진난만한 연기와 김미숙의 화장기를 뺀 연기는 압권. 다만 뻔한 스토리와 거기에서 출발하는 감동은 조금은 식상한 듯.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브래드 실버링 감독/짐 캐리·주드 로·메릴 스트립 주연/97분/전체)
화재로 부모님과 집을 한꺼번에 잃은 보들레어가(家)의 삼남매인 바이올렛, 클라우스, 써니. 부모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지만 그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한 푼의 유산도 쓸 수 없다.
집을 잃은 아이들은 후견인이 되어줄 먼 친척 올라프 백작을 만나게 되지만, 그는 오히려 아이들의 유산을 노리는데….
현실인 듯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거머리떼의 소름끼치는 공격과 차례로 무너지는 벼랑 위의 집 등 특수효과로 치장한 볼거리도 많다.
하지만 특유의 시니컬한 문체와 흡인력으로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원작의 힘을 찾아볼 수 없다.
원작과 달리 스토리 자체에 힘이 떨어진 데다, 짐 캐리의 웃음 코드와 각각의 상황이 던져주는 소품 같은 재미들이 너무 산만하다.
◇공공의 적 2(강우석 감독/설경구·정준호 주연/148분/15세)
검찰청 최고의 '꼴통' 검사 강철중. 그에게 '명선 재단 이사장 한상우' 사건이 접수되고 특유의 기질로 '나쁜 냄새'를 직감하고, 자기 담당도 아닌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확실히 웃길 때는 웃기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리게 하는 등 아기자기한 드라마는 한편의 재미있는 영화로 만들었다.
전하려는 메시지도, 공공의 적에 대한 대상도 분명해졌다.
그러나 장르영화라면 한국 최고급이라는 강우석 감독의 작품치고는 참 밋밋한 영화다.
캐릭터도 이야기 전개도 힘이 달려 두 시간이 훨씬 넘는 상영시간이 부담될 정도. 특히 극 중간 중간에 배우들의 연기력에 기대 관객에게 눈물을 호소하는 대목은 민망할 정도로 의도적이다.
◇클로저(마이크 니콜스 감독/줄리아 로버츠·주드 로·나탈리 포트만·클라이브 오웬 주연/98분/18세)
신문에 부고 기사를 쓰지만 소설가가 꿈인 댄은 도심의 한복판에서 당돌하고 도발적인 앨리스를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댄은 매력적인 사진작가 안나를 만나면서 또 다른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하고, 안나는 댄과의 사랑을 거부할 수 없으면서도 성형외과 의사 래리와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에 목마른 현대인들의 허상을 거울처럼 비추어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네 남녀의 밀고 당기는 사랑을 통해 질투와 이기심, 복수와 외로움, 온갖 치졸함을 동반하는 사랑이란 감정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그린 구도가 흥미롭다.
그러나 조금 늘어지고 관계변화가 급격한 후반부가 전반부의 긴장감을 깎아내린다.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감독/한석규·백윤식 주연/102분/15세)
대통령의 만찬 소식을 전해 들은 중앙정보부 김 부장은 수행 비서 민 대령과 궁정동으로 향한다.
만찬은 시작되고, 오늘따라 더 심한 경호실장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비위가 상한다.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그는 슬며시 방을 나와 오른팔 주 과장과 민 대령을 호출, 대통령 살해계획을 알린다.
전작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바람난 가족'으로 논란을 몰고 다녔던 임상수 감독의 신작. 사회적 논란에 대한 정면돌파라는 그의 과격한 어법에 충실한 이 영화는 '논쟁적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굳건히 한 영화로 느껴진다.
10·26이라는 현실과, 감독이 창조한 비현실이 경계 없이 마구 섞여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만들어냈다.
다만 아직도 그 현실적 무게감이 만만치 않은 박정희 시대를 선택한 이 영화가 관객과 공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B형 남자친구(최석원 감독/이동건·한지혜 주연/96분/12세)
운명 같은 사랑을 믿는 여대생 하미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영빈에게 첫눈에 필이 꽂힌다.
하지만 영빈은 뭇 여성들의 기피 대상인 최악의 혈액형 'B형' 남자. 사촌언니의 열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빈의 적극적인 애정표현에 하미는 마음을 빼앗긴다.
로맨틱 코미디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가 주는 유쾌한 웃음이 재미를 더한다.
큰 기대 없이 킬링타임용으로 영화 티켓을 끊는다면 그런 대로 만족할 듯.
◇피닉스(존 무어 감독/데니스 퀘이드·지오바니 리비시 주연/111분/12세)
항공기 한대가 반으로 찢겨진 채 사막 한가운데로 추락한다.
고비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진 채 겨우 살아남은 10명의 승객. 비상식량과 물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가공할 모래폭풍은 그들의 생명을 점점 위협하는데….
'설 연휴를 겨냥한 액션 어드벤처'라는 포스터 문구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긴다.
스펙터클에 '악센트'를 준 전형적인 재난영화답게 사막 위에 비행기가 추락하는 장면이나 사막에 버려진 사람들의 풍경은 실제처럼 아찔함을 안긴다.
그러나 드라마의 허약성은 특수효과로도 가려질 수 없는 문제일 터. 사면초가에 다다른 등장인물들이 왜 절망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을까.
◇콘스탄틴(프란시스 로렌스 감독/키아누 리브스·레이첼 와이즈 주연/120분/15세)
인간의 형상을 한 혼혈 천사와 혼혈 악마가 존재하는 세상. 태어날 때부터 그들을 구분하는 능력을 타고난 존 콘스탄틴은 자신의 능력을 저주하며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그 후 다시 살아난 그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지옥으로 돌려보내기에 나선다.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 개봉이라는 점에 일단 눈길이 간다.
'슈퍼맨'과 '베트맨'을 탄생시킨 DC 코믹스 '헬블레이저'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매력 만점의 캐릭터들이 선사하는 액션의 카타르시스가 압권. DC 코믹스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할리우드의 최첨단 특수효과와 만나며 코믹북의 한계를 벗는다.
'식스 센스'같은 이야기를 '매트릭스'와 '미이라'를 합쳐 놓은 듯한 스타일로 풀어놓은 느낌이랄까?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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