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離婚에 관한 단상

4촌 또는 8촌 이내의 가족 중 이혼한 사람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요즘도 이혼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시각은 수십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는 이혼 당사자는 물론 자녀들에게 커다란 고통이 되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이혼에는 항상 '무분별한', '충동적인', '무책임한' 등의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충동적인'이라는 표현은 결혼에도 종종 사용될 터이지만 '무분별한' 또는 '무책임한'이라는 수식어를 결혼에 끌어대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혼은 이미 '악의 축' 쪽에 있는 것인가.

이제 드디어 국가까지 이런 '무분별하고 충동적이며 무책임한' 이혼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섰다.

'이혼 숙려 기간 제도(離婚熟廬期間制度)' 및 '이혼 전 상담 제도(離婚前相談制度)'의 도입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정부의 노력은 이미 2004년 2월 '건강가정기본법' 제정으로 일부 나타난 바 있다.

이 기본법은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는데 '이혼예방 및 이혼가정지원'(제31조)이라는 이름 하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이혼 전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이혼조정을 내실화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했다.

이 법률규정으로 국민 개개인에게 바로 국가에 대한 일정한 급부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이혼문제를 국가과제의 하나로 적극적으로 돌보고자 시도하였다는 점에 대하여는 일단 지지를 보낸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의지에 대하여는 많은 이견이 있다.

◇ 국가가 이혼관리 나선 요즘

이혼 숙려 기간 및 이혼 전 상담제도를 도입하자는 보건복지부 등의 입장에서는 외국의 입법례 어디에도 우리처럼 아이들에 대한 양육책임 등에 대한 담보도 없이 '오전 접수, 오후 이혼 확인'식으로 간단하게 이혼할 수 있는 제도(우리의 경우 전체 이혼 부부의 90% 정도가 간이한 방식의 협의이혼이다)가 없다는 점을 제도 도입 필요성의 가장 큰 근거로 들고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봐도 이혼소송의 원·피고가 모두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주장하지 않거나 협의 이혼 후 친권자로 지정된 부모가 아이들을 방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이혼을 하지 않은 가정에서도 이런 일들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닌지 반문해 보면 위 논거는 본질을 벗어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아직까지 우리사회에는 가정폭력 등으로 긴급히 이혼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가 강제되면 다수의 피해자를 낳게 될 것이라거나, 국가가 이 제도를 합리적 제한 없이 정책 목표를 위하여 강제하게 되면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게 되어 결국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헨리 8세의 이혼문제가 영국의 종교개혁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호사가들의 입 끝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인격권의 중요한 요소인 이혼 의사 결정에 대한 강제적 억제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의 침해라는 논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어찌됐건, 가사소년제도개혁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만 16세 미만의 자녀를 둔 부부는 반드시 자녀 양육에 대한 합의를 거치도록 강제하고, 숙려기간제도는 협의이혼과 재판이혼 모두에 적용되도록 하는 개선안을 확정했다.

◇ '악의 선택' 인식 전환이 우선

이러한 국가의 노력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 노력이 이혼율의 저하라는 통계 결과를 얻고 싶은 나머지 이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해소하는 데는 전혀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혼을 하려는 사람들을 규범위반자 또는 적어도 잠재적 의무불이행자로 간주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사회적 현상의 하나인 이혼의 책임을 여전히 그 당사자들에게만 돌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혼을 죄악시하거나 그 절차를 불편하게 하여 이혼율을 낮추겠다는 것은 아날로그적 발상이다.

법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가 도입하려는 이런 제도가 5년 내지 10년 사이의 기간 동안에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면 그 사이에 국가의 의도대로 일시적으로 이혼율의 감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체이다.

아예 혼인신고를 하지 않거나 혼인신고를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숫자가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 당연히 예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혼율의 일시적 저하를 위하여 너무나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제는 이혼이 무분별하고 참을성 없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악의 선택'이 아니라 혼인 제도를 둔 문명사회의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임을 긍정하고 가정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국가도 개개 가정의 이혼에 대하여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의식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강정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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