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과거사> '장준하사건' 개요·쟁점

항일 운동가 출신인 장준하 선생은 57세가 되던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장씨가 등반 중 실족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유족 및 재야단체 등은 '정치적 타살'의혹을 제기하며 줄기차게 진상규명을 요구해왔다.

월간 '사상계' 발행인이었던 장준하 선생은 유신정권에 저항한 대표적인 재야운동가로서 사고 당시 민주회복을 위한 제2차 100만인 개헌 서명운동을 준비중이었다.

그러나 1975년 8월 20일께부터 시작될 서명운동을 불과 사흘 앞두고 포천군 약사봉 14m 절벽 아래서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장준하 선생은 또 앞서 같은 해 7월29일 당시 연금상태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재야세력을 규합,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벌이기로 합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장준하 선생이 급작스레 변사체로 발견됨으로써 당시 정보기관 등에 의한'타살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작년 6월 2기 활동을 마감하면서'장준하 사건'에 대해'진살규명 불능'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장준하 사건'을 단순 추락사로 결론지었다기 보다는 타살의혹이 있지만 이를 명확히 규명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사건 재구성 결과,'적어도 추락사가 아닐 수 있다' 는 방증을 확보한 것이다.

사체 검안서나 당시 사진 등에 대한 분석에서 14m 아래 절벽으로 떨어져 숨진 사체치고는 너무 멀쩡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 당시 장준하 선생과 동행했다는 유일한 목격자 김모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물론, 장준하 선생의 동향을 밀착감시하던 중앙정보부가 당일 산행에 대해서만 모르고 있었다는 점도 수수께끼다.

(연합)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