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사건'은 고(故) 윤이상(尹伊桑)씨를 비롯한 예술가, 학자 등 지식인들을 대거 간첩으로 몰았던 일로 자칫 한국-독일간 외교분쟁으로 치달을 뻔했다.
1967년 7월 8일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반정부 간첩단사건이라며 이른바 '동백림사건'을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화가 이응로(李應魯) 화백, 학계의 황성모·임석진씨, 한일회담 반대에 앞장섰던 학생운동권(통칭 '6.3세대')의 김중태, 현승일씨 등을 포함해 대학교수, 예술인, 의사, 공무원 등 194명이 동백림을 거점으로 대남적화 공작을 벌이다 적발됐다는 게 발표의 요지였다.
중앙정보부는 이들이 1958년 9월 5일부터 1967년 5월 20일 사이에 동독주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활동을 했으며 일부는 평양을 방문, 밀봉교육을 받는 등 대한민국을 적화시키는데 앞장섰다고 적시했다.
1967년 12월 3일 선거 공판에서 관련자들에게 국가보안법·반공법·형법·외국환관리법 등이 적용돼 조영수·정규명씨 등 2명에게는 사형이, 정하룡·강빈구·윤이상·어준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등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동료 음악가와 교수들의 국제적 항의와 독일정부의 도움으로 무기징역판결 2년 후에 석방된 윤이상씨는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음악가로서 였다"며 "따진다면 민족주의자일 뿐인데…"라며 당시 중앙정보부가 공산주의자로 몰아버린 것에 분노를 터뜨렸다.
재 프랑스화가인 이응로, 재 독일 작곡가인 윤이상을 포함해 몇몇 독일 유학생들이 북한 또는 동베를린을 구경하고 돌아온 것을 두고 북한의 배후 조종에 따른 어마어마한 간첩단인 양 조작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고(故) 천상병 시인도 애꿎게 당한 피해자다.
서울대 상대 동문이자 친구인 강빈구씨로부터 서독 유학중에 동독을 방문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던 천 시인이 다른 문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친구 강씨로부터 막걸리 값으로 500원, 1천 원씩 받아 썼던 게 빌미가 돼 간첩과 내통이 되고 간첩자금수수가 적용된 것이다.
천 시인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3개월, 교도소에서 3개월간 갖은 고문과 치욕스런 취조를 받고 난 뒤 선고 유예로 풀려났으나 그후 폐인이 돼 기인같은 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이 때문에 과거사위는 '동백림 사건'이 당시 중앙정보부 발표대로 북한의 조종에 따른 간첩사건이었는 지, 아니면 일부가 동독 또는 북한을 단순히 방문한 사건이었는 지를 밝히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당시 박정희 정권이 3선개헌을 앞두고 1967년 6월 8일 총선에서 여당의 개헌선(원내 3분의 2)을 확보하기 위해 3·15 부정선거 이래 최대의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그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끓어오르던 시기에 '동백림 사건' 이 터졌다는 점에서 그 연계성에 대해서도 주목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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