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법과 의학사이-까다로운 보험금 지급조건

운송업을 하는 김모씨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장해를 입을 경우 일정한 보험금을 지급받는 보험에 가입했다.

그 뒤 어느 날 김씨는 운전을 하다가 추돌사고로 머리와 허리에 충격을 받았다.

허리 치료를 위해 신경외과에 입원했는데 며칠 후부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1년 후에는 양쪽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는 약관상 2급장애에 해당되므로 그는 당연히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청력상실의 원인이 교통사고가 아니라 사고 전부터 있던 질병이라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에게는 사고 전에 이미 상당한 청력장애가 있었음이 병원기록에 의해 확인됐다.

그는 MRI, CT 등 각종 검사를 했지만 머리와 귀부분에 외부충격으로 인한 어떠한 손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들도 그의 장애가 교통사고와 무관하다고 했으며, 법률전문가도 소송을 하더라도 승산이 없다고 했다.

낙담한 그가 다른 변호사를 찾았다.

변호사는 그의 청력상실이 구체적인 경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교통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문제는 그 확신을 어떻게 사실로 증명하는 가였다.

김씨는 신경과,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등에서 가능한 모든 정밀검사를 받게 했다.

그 결과 한 병원에서 중요한 희망이 발견됐다.

그의 양쪽 내이(內耳)에 극히 경미한 좌상(멍)과 극소량의 액체가 고여 있다는 것이었다.

검사를 한 의사로부터 귀의 멍과 액체는 외부충격으로 생긴 것이며, 그로 인해 이름도 생소한 메니에르병이라는 질병이 발병했다고 한다.

의사는 그 질병으로 인해 청력장애가 생겼을 가능성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그러던 중 그에게는 갑자기 쓰러지는 증상이 반복해 나타났는데 쓰러지면서도 의식은 명료했다.

이는 뇌가 아니라 내이의 평형기관에 이상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메니에르병에 효과적인 이뇨제를 투여하자 증상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변호사는 의료기관에 대한 사실조회와 신체감정을 통해 청력상실의 원인이 교통사고로 인해 발병한 메니에르병이라는 것을 증명했고, 마침내 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다.

소송을 제기한 지 2년만의 결과였다.

각종 사고위험이 증가하고 이에 대비한 보험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사고로 인한 피해임에도 그러한 사실을 밝히는 것이 쉽지 않다.

증명하지 못해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보험제도의 목적이 예기치 않은 위험에 대비한 것이라면 피해원인이 사고인지 여부가 의심스러울 때는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방안도 연구해 볼 만하다.

임규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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