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칼 한 번에 먹구름 한 점 걷히기를, 세숫물 한 그릇에 생각 한 올 씻기기를, 수건 한 자락에 마음 한 뼘 닦이기를, 눈물 한 줄기에 연꽃 한 송이 피어나기를….'
2004년 한국 불교계의 10대 뉴스에 꼽힌 오대산 월정사의 단기출가학교.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며 심금을 울렸던 그 다큐멘터리의 감동이 책으로 되살아났다.
출가란 세상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탈출구가 아니다. 출가수행이란 자기 내면의 깊은 곳에서 들리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냉철한 물음과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처절한 고독과 고통스러운 싸움도 치러내야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 역시 출가수행의 한 과정이 아닌가. 이 책은 단기출가학교 1기 수료생인 이민우가 1부를 맡아 몸소 체험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엮었다. 눈물의 삭발염의(削髮染衣)를 하고 수계식에서 묘명(妙明)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백팔배, 삼천배, 좌선, 예불, 발우공양, 묵언, 염불, 포행, 간경, 무술 등 행자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체험하는 산사에서의 일상과 갈등들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다.
2부는 다큐멘터리 '출가'를 연출한 MBC 윤영관 PD가 다큐멘터리에서 채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내 감동의 깊이를 더했다. 실제로 가톨릭 신자인 그에게도 이번 단기출가학교의 경험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학교를 휴학하고 온 열네 살의 정안 행자가 어린 나이를 무색게 할 만큼 고된 수행을 잘 견뎌내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한아엔지니어링 부회장까지 역임한 일흔의 명선 행자가 육체적 고통과 싸워가며 어린 도반들과 30일을 수행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월정사와 지장암의 스님들 역시 이번 단기출가학교는 첫경험이었다. 행자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행자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있다. 단기출가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앞에서 자신과 싸워가며 도반들을 일으켜세우면서 이겨낸 것이다. 스님들은 시종일관 '초발심'과 '하심'을 강조했다.
명선 행자(송광섭)는 이런 유서를 남겼다. '내 죽으면 육신의 무덤을 만들지 말라. 잠시 잠깐의 사대가합(四大假合)에 불외(不外)한 이 육신일랑 불에 태워 본래의 자리로 환원시킴이 옳다. 차생에 왔다 간 내 흔적은 월정사 일주문 뒤 전나무 숲속의 삭발기념탑에 도반들과 함께 묻은 한 줌 백발로 족하니라….'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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