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 의식은 뿌리 깊이 박혀있다. 서양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신대륙 발견' 이후 세계로 뻗어나갔으며 근대 산업의 시작은 '독창성'과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영국의 산업 혁명부터 시작됐다. 동양은 세계 역사 발전에 아무런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세계 발전의 유일한 능동적 주체는 서양이었다. 하지만 이는 서양의 오만에 불과하다.
'서구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는 유럽 중심적 사상이 동양에 대해 만들어 낸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오류들을 낱낱이 열거한 책이다. 이 책은 동아시아가 서기 1천년에서 1천800년까지 세계적인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여러 과정들을 밝혀낸다. 영국 셰필드 대학의 정치학 및 국제관계학 강사인 저자는 실증적인 사례를 통해 약 500년에서 1800년까지 세계 발전을 이끈 주도 세력은 아시아였다며 동양의 실직적 복원을 꾀한다.
저자는 유럽인들이 18세기 이전에 만든 독창적인 발명은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이용한 나사못, 크랭크축 혹은 캠축, 그리고 알코올 증류법에 불과했으며 서양 경제역사가들이 주장하는 영국의 산업적 기적은 11세기 중국 송나라의 철과 강철 혁명에서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19세기까지 동양은 서양보다 훨씬 더 발전한 문명이었으며 현대 서양 문명의 발흥을 가능하게 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동양은 서기 500년 이후 세계 경제와 세계적인 통신망을 구축했고 수많은 진보한 자원을 서양으로 전파했다.
서양을 근대로 이끈 숱한 '발견'과 '발명'들이 실은 동양에서 비롯됐다는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는 1497년 희망봉을 돌아서 동인도 제국까지 항해하는 인도 항로를 개척했다. 하지만 실제로 포르투갈인은 희망봉을 가장 마지막에 '발견'한데 지나지 않는다. 바스코 다 가마보다 20~50년 정도 앞선 15세기 중반, 아랍의 항해자 시하브 알딘 아마드 이븐 마지드가 희망봉을 돌아 서아프리카 해안을 거슬러 올라간 뒤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지중해로 진입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인은 11세기부터 인도와 중국까지 항해했으며 1420년 경에는 인도의 배 한척이 희망봉을 지나 약 3천200㎞를 항해, 대서양에 도착했다.
창, 칼, 철퇴, 십자군을 화약으로 대신한 유럽의 군사혁명(1550~1660년)도 마찬가지. 화약, 총, 대포는 이미 850~1290년에 중국에서 발명됐다. 중국인은 10세기 초에 화염방사기를 이용했고 한꺼번에 320대의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로켓 발사대를 개발하기도 했다. 철제 총알을 뿜어내는 최초의 총은 1259년에 발명되었고 금속 총신은 1275년에 사용됐다. 1288년에는 '폭발물'로 알려진 조잡한 대포가 발명됐다. 이는 유럽 최초의 대포보다 약 38년 빠르다.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서양 문명의 특징을 근본적으로 바꾼 '인쇄기'의 발명. 최초의 이동형 인쇄기는 구텐베르크보다 50년 앞선 1403년에 한국에서 처음 발명됐다. '직지심경'으로 알려진 '불조직지심체요절'이 그 주인공. 저자는 구텐베르크가 한국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정황적 증거도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이 중국 중심으로 쓰인 점을 사과하면서 이 같이 말한다. "한국을 세계 발전사의 일원으로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은 영어로 쓰인 한국사 관련 책의 부족이었다"고.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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