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재선충의 습격, 해외 피해현장을 가다-(2)일본, 재선충에 이렇게 당했다.

일본인들은 집 안에 손바닥 만한 땅만 있다면 조경수를 심는다.

일본 집 정원의 조경수는 하나같이 분재를 닮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조경수는 소나무다.

그 품격과 운치는 여느 나무가 따라오기 힘들다.

일본 시마네현의 주도 마츠에(松江)시를 찾았다.

도시 이름처럼 소나무와 물이 인상적인 도시였다.

연중 절반 나날이 비를 뿌리는 곳이지만, 취재를 간 날에는 마침 쾌청한 겨울 하늘 햇살이 눈부셨다.

마츠에 성(城) 주변을 휘감아 도는 인공강 옆에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집집마다 조경수로 심어놓은 소나무가 연출해내는 풍경은 감탄스러웠다.

시마네현은 일본에서도 소나무 재선충 피해가 큰 곳 중 하나다.

8만3천ha에 이르는 현내 소나무 산림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다.

현청 직원들의 안내를 따라, 재선충 피해지역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얼마쯤 갔을까. 멀리 보이는 야산의 풍경이 심상치 않다.

푸르러야 할 산이 우중충한 잿빛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재선충 피해지역이었다.

말라 죽은 소나무들이 풍겨내는 모습은 을씨년스러웠다.

빛나는 햇살에 소나무의 푸름이 인상적이었던 마츠에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재선충 피해를 입은 소나무를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호나잔 공원 전망대로 올랐다.

전망대에 오르니 우리의 동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산에 오르던 중 갑자기 날씨가 궂어지더니 비가 흩뿌리고 바람이 몰아쳤다.

올라가는 길에 죽은 소나무가 드문드문 보였다.

핏기 잃은 주검처럼 소나무들은 그렇게 메마른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집중 피해 현장. 눈이 의심스러웠다.

수천 아니 수만 그루의 소나무들이 집단으로 말라 죽어 있었다.

재선충에 감염돼 죽은 소나무는 껍질이 벗겨진다.

이곳 소나무들도 그랬다.

껍질이 벗겨지면 노란 목질이 드러나야 하건만 이곳 소나무들은 마치 핏기 잃은 피부처럼 회색 빛으로 속살이 탈색돼 있었다.

앙상한 가지를 늘어뜨린 채 말라 죽은 소나무들은 죽어서도 드러눕지 못한 채 거대한 '소나무 공동묘지'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되면 인근 나무와 함께 벌목해 낸 뒤 훈증(薰蒸: 약을 탄 기체에 노출시켜 병충해를 죽임) 처리하거나 소각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피해목이 워낙 많아 손을 댈 수 없게 된 나머지 죽은 소나무를 그대로 방치해 놓은 곳이 많았다.

시마네현 이즈모시 농림진흥센터 기시모토 타츠오 연구원은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돼 죽을 경우 잘라 내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비록 죽은 나무이지만 놔두면 집중호우 때 산사태를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일본 열도 대부분의 산에 있는 소나무가 재선충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의 소나무 산림에 대한 방제는 그리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다음날 도쿄에서 만난 일본 임야청 산림보전대책실 고이도 타카시 계장은 "전체 송림 보호 대책은 사실상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해안 방품림과 유적지·공원 소나무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고이도 계장은 "재선충에 관한 한 일본은 실패했다"고 털어 놓았다.

"예산·인력을 총투입해 발생 초기에 재선충을 잡지 못하면 한국의 소나무도 일본처럼 될 것"이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재선충의 습격으로부터 한국의 소나무를 살리기 위한 해답은 일본의 실패 사례를 통해 이미 제시돼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일본 시마네현에서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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