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성로·금성로…"도로 이름 왜 붙였지?"

"은하수로, 수성로, 금성로, 화성로, 목성로, 토성로…."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거리가 아니라 엄연히 현재 대구에 있는 길 이름이다.

집 주소를 도로명과 건물번호 위주로 바꾸는 '새 주소 부여사업'이 지역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행정 관청의 편의적인 이름 붙이기로 시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99년부터 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사업에 착수, 작년까지 국·시비와 구비 등 68억 원을 들여 시내 간선도로, 골목길 등을 중심으로 23만1천984개 건물과 7천850개의 도로명판, 88만6천500개의 안내도를 설치했다.

올해도 4억5천200만 원을 추가 투입해 건물(8천개), 도로명판(400개), 안내도(22만개) 등의 제작을 마무리 지을 방침이다.

그러나 새 도로명이 현재 지명과 확연히 다르거나 지역별 특색마저 살리지 못하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마저 의아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태양계 행성의 이름을 따서 '수성로, 금성로, 화성로, 목성로, 토성로, 혜성로' 등으로 이름이 부여된 곳도 있고, 대구선 주변에 인접한 '은하수로'는 '은하철도(일본 만화영화)처럼 번영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동사로'는 '신암1동 동사무소 가는 길'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할 정도다.

특히 동구의 민들레길, 들국화길, 달맞이꽃길, 은초롱길과 수성구의 국화길, 동백길, 백합길, 장미길 등은 지역과는 전혀 무관한 꽃이름을 쓰고 있다.

또 옛 지명이나 자연마을 이름에서 따 온 중구의 아미산길, 연구산길, 서구의 가르뱅이길, 도기말길, 남구의 도촌길, 동괘진길, 북구의 백사벌길, 고척로, 수성구의 묵너멋길, 천을로, 달서구의 매자길, 머무동길 등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다보니 주민들에겐 낯선 이름들이다.

대구염색산업단지 내에 있는 서구의 비단길, 색동길은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이름의 유래를 알기 힘들 정도며 동구와 달서구의 개나리길, 북구와 서구의 감나무길, 과거 논과 밭 사이의 길에서 유래를 따왔다는 '들안길'은 수성구의 먹자골목인 들안길과 중복되는 곳들도 있다.

김모(31·대구 북구 침산동)씨는 "한번 정해진 도로명은 적어도 수십년 동안은 써야 할 것인데 관청의 편의에 따라 성의없이 지어진 것들이 많다"며 "이름을 바꾸려면 이미 부착한 도로 및 건물 명판을 교체해야 하고, 지도 내용도 수정해야 하는 등 막대한 혈세가 낭비될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도로명의 경우 사업초기에 각 구청에서 주민자치위원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구청별 지명위원회가 결정한 것"이라며 "아직은 시민들에게 낯설게 느껴지지만 전국적으로 사업이 완료되고 실생활에서 활용도가 높아지면 익숙해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새 주소사업은 1910년대 일제가 조세징수를 목적으로 부여한 토지 지번에 의한 주소 체계를 토지와 건물을 분리,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부여해 생활주소로 활용하기 위해 99년 국책사업으로 시작됐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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