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외나무다리를 놓던 날 감개무량해 잠도 오지않습디다.
"
예천군 보문면 신월1리 권상기(61) 이장이 영사기를 돌리듯 되살려내는 외나무다리의 내력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애환이었다
한때 사라졌던 외나무다리를 지난달 다시 놓은 이유는 뭘까. "아하!" 하고 무릎을 칠 수도 있지만 선뜻 믿기지 않았다.
다리 건너편 나즈막한 산자락, '범골' 과 '신골'에서 땔나무를 해다 나르려고 다리를 놓았다니 말이다.
"90년대 중반 마을 집집마다 기름 보일러를 설치해 나무할 일이 없어졌지. 그런데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보일러가 애물이 됐지 뭐야. 하는 수 없이 마을사람들이 그 때 그 시절처럼 강에 다리를 놓고 나무하러 가자고 한 거지."
권 이장의 기억 속에 외나무다리는 마을의 생명선으로 각인돼 있다.
다리 건너편, 호명면 황지리에 대부분 논밭이며 땔나무가 나는 산이 있어 신월1리 사람들은 대를 건너 이 다리를 건너 다녀야만 했기 때문.
다리를 사용하는 기간은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추수가 끝난 뒤 가설하고 장마가 오기 전에 뜯었다.
여름 농사철에는 외나무다리 대신 나룻배가 오가며 역할을 대신했다.
20여년 전 마을 주변에 황지리로 돌아갈 수 있는 콘크리트 다리가 생긴 뒤 외나무다리의 효용가치는 뚝 떨어졌다.
그러나 땔감 수요는 여전히 남아 다리는 해마다 계속 놓았다.
주민 이우직(46)씨는 "다리 놓는 날은 다릿발을 세우느라 허기진 장정들을 위해 아낙들은 화톳불 언저리에서 배추전을 부치고 국밥을 말아내는 등 잔칫날 같았다"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웃고 뛰어 노는 소리에 종일 강변이 떠들썩했다"고 회고했다.
외나무다리에는 상부상조정신의 진면목이 배어 있었다.
70m 다리를 놓기 위해 집집마다 미리 상판 1장씩을 다듬어 두었다가 다리 놓는날 어김없이 가져왔고 비용도 나눠냈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아름드리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사용한 점. 마을사람들은 "옛날에는 나무가 워낙 귀해 상판을 한뼘 남짓 폭으로 잘개 쪼개 사용했는데 새로 놓은 다리는 신작로"라며 웃었다.
권 이장을 둘러싼 마을주민들은 "보일러 기름값에 주눅 들었지만 그 때문에 마을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며 좁은 다리를 건너다 헛디뎌 나무짐을 진 채로 살얼음 낀 강물에 떨어진 얘기 등 추억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예천·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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