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의 향토인들] (6)산자부·건교부·공정위·금감원

실물경제·건설교통·금융 등 정책 '좌지우지'

PDF로 보기

재경부가 거시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면 '굴뚝산업'을 중심으로 한 실물경제는 산업자원부가 맡고있다. 산업화시대에 '수출입국'(輸出立國)의 기치아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산자부는 옛 상공부와 동력자원부가 합쳐져 '통상산업부'가 됐다가 국민의 정부때 통산분야를 외교부에 넘겨주고 현재의 진용으로 재편됐다. 국민의 정부때 장관을 두번이나 역임한 신국환(辛國煥)의원이 전형적인 '통상맨'이었다.

산자부의 좌장은 이희범(李熙範) 장관이다. 이 장관은 고향이 안동이지만 서울사대부고, 서울대를 나왔다. 산자부차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서울산업대총장을 맡다가 2003년 12월 발탁됐다. 전자공학과를 나온 엔지니어출신이지만 12회 행정고시에 수석합격한 수재다. 미국과 EU상무관을 지낸 덕에 'EU통합론'을 출간할 정도로 통상분야에 있어서도 일가견이 있다.

윤교원(尹敎源)기술표준원장은 기술고시출신이다. 윤 원장 역시 고향은 대구지만 경기고와 서울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하는 등 일찌기 고향을 떠났다. 울진이 고향이지만 경기고를 나온 재경부 김경호(金璟浩) 공보관도 비슷한 케이스다. 윤 원장은 97년 대구.경북지방중소기업청장을 지냈고 벤처기업국장을 지낸 후 2003년 기술표준원장직(1급)에 올랐다. 올초 산업정책과장에서 청와대 정책실에 파견간 윤상직 국장도 어릴적 고향 경산을 떠나 부산고를 나온 출향인이다.

그런 반면 서영주(徐泳柱) 무역유통심의관은 경북고를 나온 전형적인 TK다. 그는 딸(서민정)때문에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서 심의관은 평소에는 음치연기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2000년 대구.경북지방중소기업청장을 지내고 중소기업청 중소기업국장 등을 거쳐 지방과 중소기업의 현실에 대해 해박하다. 중소기업청 벤처기업국장시절에는 벤처열풍이후의 뒤치닥거리에 진땀을 빼기도 했다. 김중권(金重權) 전 민주당대표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인 98년 경제구조조정기획단장으로 청와대로 파견갔다가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김 전대표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산자부에서는 대구의 밀라노프로젝트와 섬유패션산업을 총괄하고 있는 윤수영(尹秀榮) 섬유패션산업과장(행시24회)도 빼놓을 수 없다. 윤 과장은 청송이 고향이지만 경주에서 자라다가 서울에서 경기고를 나왔다.

신국환 장관시절 공보관을 지낸 김신종(金信鍾) 국장(안동. 경북고 고려대)은 부처간 교류인사로 환경부 대기보전국장으로 가 있다.

최준영(崔俊濚)중소기업특별위원회 정책조정실장(1급. 칠곡)은 행시20회로 경북도에서 사무관생활을 시작했다. 경북고 서울대를 나온 최 실장은 청와대에 두차례 파견근무(89년,2002년)했고 산업정책국장에 이어 정통부 정보통신정책국장으로 1년간 갔다가 올초 중소기업특위로 돌아왔다.

차관보까지 지낸 김종갑(金鍾甲)특허청장(행시 17회.안동)은 복수차관제가 실시되는 산자부의 차관후보물망에 올라있다. 대구상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통상산업부 통상협력국장과 산자부 산업정책국장에 이어 차관보를 지냈다.

동력자원부에서 석유정책과장,자원개발국장,석유가스국장 등을 지낸뒤 상공부 초대 에너지정책국장, 산자부 자원정책실장 등 에너지관련부서를 섭렵한 한준호(韓埈皓) 한전사장(행시 10회. 구미)은 산자부의 '자원과 에너지 인맥의 좌장'으로 불린다. 중소기업청장과 중소기업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4년 공모를 거쳐 한전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건설교통부는 몸집이 크다. 옛 건설부와 교통부를 통합한 탓이지만 국토관리청 등 지방청도 많고 산하기관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런만큼 다양한 인맥이 존재한다. 김세호(金世浩) 건교부 차관이 지난 2003년 3월 철도철장으로 발탁된 것은 참여정부 첫 차관급인사의 파격으로 꼽혔다. 행시 24회인 김 차관은 건교부내에서는 물론 같은 행시기수중에서도 선두주자였다. 그는 이정무 장관시절 공보관을 지내다가 신공항건설기획단장으로 당시 신공항건설공단이사장을 맡고있던 강동석(姜東錫) 장관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김 차관은 건교부기자들이 선정하는 최고의 모범공무원으로 뽑혀 '모범공무원'으로 불린다.

권도엽(權度燁) 차관보는 주택국장을 지내다 연초 차관보로 승진했다. 행시 21회로 안동세무서에서 공직을 시작했지만 82년 건설부로 자리를 잡았다. 도시건축심의관 국토정책국장, 주택국장 등을 역임했다. 의성출신이지만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했다.

항공정책심의관으로 있던 김광재 국장(대구)은 지난 해 11월 캐나다 몬트리올 총영사관(국제민간항공기구 파견)로 2년간 파견나갔다. 최경수(崔庚洙) 조달청장(성주)은 복수차관제실시가 확정되면서 재경부차관후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경북고 서울대를 나왔고 행시 14회로 공직생활 초기에는 세무서에서 실무를 익혔다. 이후 김진표 교육부총리, 이용섭 국세청장 등과 함께 재경부 세제실의 3인방으로 재산소비세심의관 세제총괄심의관 세제실장 등을 주고받았다. 2003년에는 국세청과 인사교류를 하면서 중부지방국세청장으로 나갔다가 조달청장으로 부임했다. 세제실에서는 아직도 최 청장을 '일벌레'지만 순수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경북대 사범대 교수로 있는 부인때문에 지금도 주말부부 생활을 즐기고 있다.

배영식(裵英植)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재경부 경제협력국장때 인기공무원 1위로 꼽힌적이 있을 정도로 '영국신사'다. 경북고 성균관대를 졸업했고 행시 13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재경원시절 공보관을 지내 지금도 '명공보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2001년 기획관리실장을 끝으로 재경부를 떠나 2002년부터 신용보증기금이사장을 맡아 고객중심의 경영혁신을 화두로 내세워 공기업혁신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검찰'로 불리고 있다. 과거 경제기획원시절에는 공정거래국으로 푸대접을 받았으나 시장질서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공정거래위의 역할 역시 강화되고 있다. 장항석(張恒錫)상임위원은 예천출신으로 고려대를 나왔다. 참여정부출범이전부터 2004년까지 조사국장을 맡아 언론사의 불공정거래행위 등의 조사활동을 진두지휘했다. 2004년 독점국장에 이어 연초 상임위원으로 승진했다.

이동규(李東揆) 정책국장은 지난 2002년 대선전날인 12월18일 독점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참여정부의 시장개혁작업을 총괄지휘한 실무자다. 참여정부 출범초기 시장개혁의 로드맵을 작성한 데 이어 지난 해 처리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완성시킨 실무책임자였다. 문경이 고향이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떠나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했다. 공정위 공보관도 지냈다.

한편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체제는 특이하다. 금융감독위원회(위원장은 장관급)라는 공무원 조직과 금융감독원이라는 민간조직으로 양분돼있다. 금융감독위가 금융기관 인.허가권과 징계권 등 금융감독관련 정책을 결정한다면 금감원은 각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및 검사 증권.선물시장 등에 대한 조사.제제 등을 한다.

금감원은 지난 99년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 4개기관이 합쳐져 직원수만 1600여명에 이르는 거대조직이다. 현재 금감위에는 지역출신이 없지만 금감원 조직내의 지역출신 최고위급 인사는 지난해 연말 감사원장 특별보좌관에서 자리를 옮긴 이장영(李長榮) 국제담당 부원장보(대구)다. 경북고 서울대를 나온 그는 81년 국제경제연구원(KIEI)에 들어간 이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조세연구원, 한국금융연구원 등에서 국제금융을 연구해왔다. 특히 93년~96년까지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금융연구원 수석연구원으로 있으면서 2000년 진념 경제부총리의 자문관으로 정부에 들어온 이후 전윤철 부총리 자문관을 거쳐 전 부총리가 감사원장으로 가자 감사원장 특별보좌관으로 따라가서 감사원의 금융감독체제정비방안 마련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임주재(林周宰)총무국장(안동)은 계성고, 연세대를 졸업했다. 79년~98년까지 한국은행에 있다가 은행감독조직이 통합되면서 금감원에 합류했다. 금감원에서는 신용감독 부국장, 조사연구국장 신용감독국장 기획조정국장 등으로 업무영역을 넓혔다. 참여정부 출범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금감원을 대표해서 파견될 정도로 조직내에서 신망을 받고있다.

박윤호(朴允鎬) 총괄조정국장은 의성(가음면)이 고향이지만 부산에서 자랐다. 부산고 서울대를 나와 80년 한국은행에 들어갔다가 83년 은행감독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통합된 금감원에서 국제감독실장(99), 신용분석실장(2001)을 맡았고 총무국장(2003), 감독총괄국장(2004)에 이어 연초 총괄조정국장을 맡았다.

이재식(李在植) 회계감독1국장 역시 한국은행 출신이다.이 국장은 78년 한국은행에 입행, 금감원 출범전까지 한국은행을 지키다가 99년 금융감독조직이 통합되면서 금감원에 합류했다. 98년 IMF직후 금융구조조정때는 금감위의 구조개혁기획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경북 금릉군 아파면에서 태어나 아포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성동고 연세대를 나왔다.

연초 통합거래소가 출범되기 전까지 금감원 기획.조사담당 부원장보로 있던 이영호(李永鎬)씨(울릉)는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출범하면서 시장감시위원장으로 발탁됐다. 이 위원장은 사대부고와 고려대를 졸업했다. 그는 77년부터 98년까지 20여년간 증권감독원에서 감독업무를 해온 중권시장 전문가다. 금감원장 비서실장, 증권감독국장, 증권.보험담당 부원장보를 역임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