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관객이 뽑은 2004 최고의 배우 이홍기·허세정

'연극사랑 사람사랑 대구모임' 선정… 20·14년 무대지킨 파수꾼

연극은 배고픈 직업이다. 연극판에서 연기력을 쌓아 영화판으로 나가 성공한 사람들이 꽤나 있는 지금도 역시 연극인들은 배고프다. 수십억을 오가는 영화 제작비에 비해 연극 제작비는 어떤가. 외적인 상황으로만 본다면 연극인들은 항상 고통받고 힘들어해야만 정상이다. 하지만, 연극인들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행복을 가진 듯하다. 오로지 연극만을 위한 그들의 쉼없는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연극인의 대부분은 "관객들의 사랑과 박수의 힘"이라고 입을 모은다.

연극관객 모임인 '연극사랑 사람사랑 대구모임'이 최근 '2004년 관객이 사랑한 최고의 지역 연극배우'로 이홍기(38), 허세정(33)씨를 선정했다. 3일 그 행복한 배우들을 소극장 '열린극장 마카'에서 만났다.

"아침에 소식을 듣고 너무 행복했어요. 거실에서 크게 한번 웃었지요. 관객의 사랑을 받아먹고 사는 사람이 관객들에게 최고의 상까지 받게 됐으니, 연극판에 뛰어든 이후 20년이라는 세월이 헛되지 않아 기쁩니다."(이홍기)

"저도 처음엔 어리둥절했어요. 그러면서 막중한 부담이 생기더군요.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허세정)

이씨에겐 지난해가 최고의 한해였다. 극단 처용의 '인류 최초의 키스'를 비롯해 시립극단의 뮤지컬 '동화세탁소', 극단 마카의 '오델로'까지 출연작마다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2002년에 대구연극협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한동안 무대를 떠나있었는데, 지난해 여러 작품을 하면서 배우는 무대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됐지요."

"홍기 선배는 참 자상한 선배입니다. 아마도 연극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를 꼽으라고 하면 그가 1위일 거에요. 제일 예쁜 배우는 저겠지만, 헤헤." 허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씨가 화답한다. "언젠가 어떤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배우는 열심히 해봐야 소용없다. 잘해야 하는 거지 라고요. 허세정씨는 잘하는 배우에 속해요. 연극에 대한 풍부한 열정 등 배울 점이 많은 후배이지요. 참, 미모도 이만하면 훌륭하고."

10년 이상 '롱런'하고 있는 여배우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미만인 대구 연극판에서 허씨는 1991년부터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역 무대를 지킨 '파수꾼'과 같은 존재다. 여자에게 결혼과 출산 등 현실적인 문제는 연극판에서도 걸림돌이기 때문. "얼마 전에도 괜찮은 여자 후배가 결혼하면서 무대를 떠났어요. 점점 줄어드는 후배들의 숫자를 보면서 배우 기근에 허덕이는 지역 연극계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하지요."

관객들로부터 최고의 배우로 꼽힌 이들의 연극관은 무엇일까. 이씨는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작품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완벽하게 소화하자"라고 답했다. 허씨는 "지난해 비로소 제 연기에 대한 결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내가 돋보일까, 더 튀어보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빠졌었지요. 그런데 지난해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무대에 올리면서 관객 또는 상대 배우의 관점에서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할 까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연극은 혼자서만 하는 작업이 아니니까."

대구 관객들로부터 지난해 최고의 연극스타로 인정받은 이홍기·허세정씨. 그들은 앞으로 어떤 작품과 활동으로 지역 관객들에게 보답할지 궁금해진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사진설명 : '관객이 선택한 2004년 최고의 연극배우'라는 수식어가 이홍기(오른쪽)·허세정씨의 연극인생에 좋은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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