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석고대죄

당쟁으로 어지럽던 조선 영조 당시, 정권 장악을 노리던 세력은 영조에게 세자를 무고하곤 했다. 영조는 자주 세자를 질책했고, 세자는 툭하면 석고대죄를 해야 했다.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던 세자는 돌출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측은 세자의 비행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 마침대 격분한 영조에 의해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서 죽어갔다.

○…왕조시대의 석고대죄(席藁待罪)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거나 왕명에 어긋난 행위 등으로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때 흰 옷에 산발한 모습으로 거적 위에 앉아 단식하며 죄과에 대한 처벌을 기다리던 의식이었다.

○…요즘 때아닌 석고대죄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지난해 한 국가보안법 관련 토론회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독재권력의 인권유린에 앞장섰던 법관들을 질타하며 대법원장의 석고대죄를 요구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항의와 역사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통회하며 현직 교사 150여명이 서울 종묘공원에서 죄인처럼 꿇어앉아 석고대죄를 하기도 했다.

○…사회 원로 70여명이 4일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 종아리를 때렸다. 수능부정과 내신성적 조작, 위장편'입학, 불법과외 등 잇따른 교육계 부정에 대해 "학생들을 나무라기 전 선생들이 깊이 속죄해야 하고, 또 선생을 잘못 가르친 우리들이 참회해야 한다"며 스스로에게 매를 들었다. 두 명의 원로가 소복차림으로 돗자리 위에서 '석고대죄'를 하는 동안 교육계 원로 17명은 바지를 걷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때렸다. 행사장에는 '우리가 잘못했습니다'란 플래카드가, 원로들의 가슴엔 '잘못했습니다'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소복차림으로 무릎꿇은 두 원로에게서는 비장감이 느껴진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 내린 원로들이 "하나요, 둘이요…" 매의 숫자를 세며 자기 정강이를 때리는 모습은 처절하다. 그 방식이 구식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동설서(指東說西)의 은유가 통하기 힘든 시대에 원로들이 보여줄 수 있는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 무책임과 책임전가가 난무하는 이 사회에서 '내 탓이요'를 외치며 자신부터 먼저 참회하는 마음 자세가 큰 변화의 씨앗이 되었으면….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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