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묵은 해 떨쳐내고 "윷이야"

설날·정월대보름 조상들 즐기던 민속놀이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9일은 을유년 새해 첫날. 요즘처럼 사회와 경제상황이 어려울수록 스스로는 더욱 삼가면서도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는 보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날부터 새해의 첫 보름달이 떠오르는 정월대보름까지 우리 겨레가 즐겨왔던 전래의 민속놀이를 소개하며 한결 풍성한 명절을 기원해 본다.

▧윷놀이

설과 정월 대보름 사이 남녀노소 누구가 즐길 수 있는 윷놀이는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우리 민속놀이. 한자어로 사희(柶戱) 또는 척사(擲柶)라고도 불리는 윷놀이의 유래에 대해 조선시대 실학자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 '사희조'에서 고려의 풍습으로 보았으나, 중국의 북사(北史), 태평어람(太平御覽)이나 일본의 만엽집고의(萬葉集古義) 등의 문헌에 기록된 내용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윷놀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먼저 부여 시대에 다섯 종류의 가축을 다섯 마을에 나누어주고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비롯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도를 돼지(豚), 개는 개(犬), 걸은 양(羊), 윷은 소(牛), 모는 말(馬)에 비유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삼국 시대에 생겼다고 하는 민간 전설도 있다.

신라 시대에 궁녀들이 새해 초에 즐기던 놀이라고 하기도 하고, 백제의 관직명인 저가(猪加), 우가(牛加), 마가(馬加), 대사(大使)에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한다.

또 고구려의 오가(五加:동·서·남·북·중앙)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윷놀이와 윷판의 유래는 아직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윷판(馬田)은 '말밭' '말판' '윷밭'이라고도 하며 그 기원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있다.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주장한 상대(上代) 오가(五加)의 출진도(出陣圖)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고, 부여의 관직을 모의한 사출도(四出圖)에서 나왔다는 견해도 있다.

조선 선조 때 김문표(金文豹)가 말한 사도설(柶圖說)도 있는데 이 사도설에서는 윷을 사(柶)라 하고, 윷판은 천체를 상징한다고 한다.

중앙에 있는 것은 북극성이고, 둘레에 있는 것은 28숙(宿)의 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 행로(行路)는 동지, 하지, 춘분, 추분에 비유하고 있다.

윷놀이는 대동놀이적인 성격과 주술적인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놀이적인 재미라는 차원을 넘어 협동심을 고취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효과도 있으며, 농사의 풍흉이나 개인의 신수를 점치기도 한다

윷놀이는 개인끼리 또는 여럿이 편을 갈라 윷가락이나 윷쪽을 윷판에 던져 윷이 나온 결과에 따라 말을 쓰면서 어느 편이 정해진 말수를 먼저 내는가를 겨루는 놀이. 윷가락이나 윷쪽이 엎어지거나 젖혀지는데 따라 '도·개·걸·윷·모'라 하여 명칭과 점수에 차이가 나는데, 윷놀이는 윷을 잘 던지기만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판을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한 승리의 관건. 남의 말에 잡히지 않으면서 가장 가까운 길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자기 말끼리 덧놓아 '두동산이(두동문이)'나 '석동산이(석동문의)', 많게는 '넉동산이'를 만들어 한번에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매우 빨리 날 수 있다.

요즘은 '뒷도'를 표시해서 이것이 나오면 뒤로 한 칸 물리게 하는 등 재미를 더하고 있다.

▧팽이치기

팽이치기는 중국은 당나라 때,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널리 유행했다고 한다.

팽이란 축(軸)을 중심으로 둥근 동체가 회전운동하는 장난감으로서 박달나무나 대나무처럼 무겁고 단단한 나무의 한쪽 끝을 뾰족하게 깎아 만든다.

이 팽이를 약 40∼50㎝의 채로 치면서 돌리는 것이다.

팽이도 다양한 놀이방법이 있다.

자기의 팽이를 돌리다가 상대방 팽이와 힘껏 부딪치게 조작하여 넘어지게 하는 '팽이싸움'이 있고, 누구의 팽이가 멀리 가서 오래 도는가를 겨루는 '멀리치기'가 있다.

또 팽이를 힘껏 쳐 돌린 뒤 상대방 팽이와 한번 부딪치고 나서 누구의 팽이가 더 오래 도는가를 따지는 '오래돌리기', 출발점에서 일정지점까지 누가 팽이를 빨리 몰고 돌아오느냐를 경쟁하는 '빨리돌아오기' 등의 놀이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추운 겨울 아이들에 바깥에서도 씩씩하게 놀 수 있는 민속놀이이다.

▧투호놀이

투호놀이는 일정한 거리에 놓인 병 속에 화살을 던져넣는 놀이로, 두 편이 청·홍색의 화살을 가지고 어느 편이 더 많은 화살을 병 속에 던져 넣느냐에 따라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투호는 조선시대에는 왕이 경회루에서 직접 즐겼다는 기록이 있는데 주로 궁중이나 고관들의 기로연(耆老宴) 때 여흥으로 즐겼다고 한다.

'북사(北史)' 백제전과 '신당서(新唐書)'의 고구려전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즐긴 놀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투호놀이에 사용된 병의 종류나 화살의 크기도 다양하다.

일정한 장소에 둔 투호병을 향하여 일정한 위치에서 살을 던져 병 속이나 귀에 던져 넣는 것으로, 살이 꽂히는 데에 따라 득점이 정해진다.

던질 때는 양쪽 어깨가 균형을 취해야 하고 어깨가 기울어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이기는 것을 '현(賢)', 지는 것을 '불승(不勝)'이라 하며, 한 번을 '일호(一壺)'라 한다.

만약 항아리 안에 살을 하나도 넣지 못하면 벌로 얼굴에 먹칠을 해서 한바탕 웃고 즐기기도 했다.

투호놀이는 놀이 자체가 우아하고 여유가 있어서 반가에서 주로 즐겼으며, 음력 정월 첫 사일(巳日)과 9월 중양절(重陽節·9일), 그리고 명절이나 집안 잔칫날에 친척들이 모였을 때 주로 즐겼다.

▧지신밟기

2정월 대보름날에는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농악대를 중심으로 집안의 지신을 밟아 위로하는 민속놀이로 요즘 대도시에서도 이 같은 풍경을 종종 접할 수 있다.

노인회관의 할아버지들이나 마을의 청장년들이 모여 사대부와 포수 등의 가장을 하고 마을을 돈다.

징과 꽹과리, 장구, 북을 치며 돌아다니는데 집 안팎에서 고사반을 외며 지신밟기 노래를 부른다.

농악대가 대문 앞에 가서 '주인 주인 문 여소. 나그네 손님 들어가오'하고는 일행이 문안으로 들어가 농악을 울리면서 마당과 뒤뜰, 부엌, 광을 돌아다닌다.

집 주인은 지신밟기 일행이 찾아오면 떡과 과일, 술상을 차리고 일행을 대접하며, 때로는 지신을 밟아주어 고맙다는 뜻으로 곡식이나 돈을 주어 답례하기도 한다.

이렇게 지신을 밟으면 그 집 주인과 가족의 수명과 건강을 지키고 제화초복(除禍招福)을 마련해 준다고 믿었다.

한 집이 끝나면 다음 집으로 찾아가 지신을 밟으며 이때 받은 돈과 곡식을 모았다가 마을 공동기금으로 쓰는데 다리를 놓거나 상조기금으로 사용한다.

도시에서는 상업을 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농악대를 청하여 지신밟기를 하기도 한다.

▨연날리기

문헌에 남아 있는 유래는 1천300여 년 전 신라 진덕여왕 때 김유신 장군이 반란군 진압시 사용했다는 기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고려 말 최영 장군이 탐라국 평정에서 군사를 연에 매달아 적진에 상륙시켰으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통신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연의 종류는 크게 꼬리 달린 가오리연과 사각 장방형의 방패연, 각종 동물, 인물 등으로 만든 창작연 등으로 나뉜다.

방패연의 경우 바탕에 그린 무늬와 색깔에 따라 연의 이마에 반달을 붙인 반달연, 치마를 두른 것처럼 위는 희고 아래는 색칠한 치마연, 연의 전체를 색칠한 초연, 연의 이마나 허리를 동여맨 것처럼 만든 동이연, 연의 몸에 여러가지 모양을 박은 박이연, 연의 아래에 고리아 발처럼 종이를 오려 붙인 발연 등으로 분류된다.

연줄을 감는 얼레도 볼기짝 얼레, 네모 얼레, 육모 얼레, 팔모 얼레 등 다양하다.

연날리기와 관련된 말도 많다.

꼬드기다는 연을 날릴 때 연이 높이 올라가도록 연줄을 잡아 젖히는 것을 뜻하고, 말똥지기는 연이 잘 올라가도록 연을 잡고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또 얼리다(연줄과 연줄을 서로 얽히게 하다), 통줄 주다(줄이 계속 풀려 나가게 하다), 별박이(멀리 날아가서 조그맣게 보이는 종이연), 숙다(연의 머리가 아래로 기울어지다), 머지다(연줄이 저절로 끊어지다) 등이 있다.

연날리기는 정월대보름 전에 성황을 이루지만 대보름이 지나면 날리지 않는 것이 본래의 풍속이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액연 띄운다' 하여 액(厄)자를 연에 써서 멀리 날려보냈다.

연 놀이에는 연 높이 날리기, 연줄 끊어 먹는 연싸움, 연 곡예하기, 연 많이 매달아 날리기 등이 있다.

▨널뛰기

큰 명절에 성행한 여자들의 대표적인 놀이로 도판희(跳板戱)라고도 한다.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정확한 유래는 알려진 것이 없다

널뛰기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한 시절에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널뛰기는 1년 건강을 비는 내용도 담고 있다.

널뛰기가 여자들의 신체단련을 위한 연성과목(鍊成科目)의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처녀 시절에 널뛰기를 하지 않으면 시집가서 아기를 순산하지 못하고, 정월에 널뛰기를 하면 1년 내내 발바닥에 가시가 찔리지 않는다.

널을 많이 뛰어야 산에 나물 캐러 가서 다리가 아프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널뛰기와 비슷한 놀이로 일본 오키나와 류큐에는 판무희(板舞戱)가 있다.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에 걸쳐 류큐의 상인들이 많이 내왕한 사실로 미루어 한국에서 전파된 것으로 추측된다.

널뛰기 승부는 한쪽이 힘껏 굴러서 상대편의 발이 널빤지에서 떨어지면 난다.

둘이서 또는 여러 사람이 두 편으로 나누어 경기를 할 수 있고 몸무게가 다르면 거리로 조절, 균형을 맞춘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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