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앗!이런…명절 나의 실수담

'실수하는 당신이 아름답다' 누구나 실수는 하기 마련. 특히 많은 가족들이 모이고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명절 때는 온 신경을 기울여도 크든 작든 실수를 하게 됨은 어쩔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피식' 웃을 수 있는 설날 실수담을 모아봤다.

△'방구쟁이'사위= 아내과 결혼하기 두해 전 설날 연휴 때의 일이다. 당시 아내와 1년이 넘게 사귀었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지를 못해 설을 맞아 '세배'도 드릴 겸 인사를 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목욕도 하고 이발도 하고 잔뜩 준비를 했다. 그런데 너무 긴장했는지 점심때 먹은 떡국이 말썽을 부리는 것이었다. '꾸룩꾸룩~' 속에서 '이라크 전쟁소리'가 나오고 설사가 나오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약속시간에 아내의 집에 갔고 현재의 처가 식구들과 저녁식사 식탁에 모두 앉았다.

그런데 잘 보여야 할 그 자리에서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뽀옹~' 버들피리 소리를 내고 만 것.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지만 다행히 식구들이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긴장을 늦춘 사이 이번에는 더 큰 가죽소파 찢어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내가 기르던 '쫑'이라는 똥개가 구수한 냄새를 맡고 내 옆에 턱 하니 않는 게 아닌가. 그일 때문에 나는 두고두고 처가에서 '방구쟁이 사위'로 입살에 오르게 되었다.

김성수(33.대구시 범어동)

△'술통 며느리'= 10년 전 갓 시집왔을 때의 일이다. 연말에 결혼을 하고 시집살림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설을 맞았다. 그런데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어머니는 부엌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일일이 친정으로 전화를 해서 설준비를 하려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설을 이틀 앞두고 나서야 시어머니가 설준비를 하러 시장에 가자고 하는 게 아닌가. 서문시장을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대충 장을 보고 저녁이 되어 시장 안에 있는 순대국밥 집으로 향했다. 시어머니가 '술한잔 할려' 하기에 날씨도 춥고 속엣말도 할 겸 '딱 한잔만요'라는 단서를 붙이고 술잔을 들이켰다. 소주 한잔을 했더니 얼었던 몸이 쫙 풀렸다. 한잔을 더 마시고 어머니께 서운했던 이야기를 하려니까 혀가 말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어머니가 어디 전화를 하는 것 같더니 모든 게 아득해졌다.

다음날에야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그날 밤 어머니한테 술주정을 한 거였다. '요즘 저같은 며느리 없어요. 설도 다가오고 저 혼자 어떻게 하라고' '어머니가 무서워서 못 살겠어요. 그냥 우리 엄마한테 갈랍니다' 웃다가 울다가 한참을 횡설수설하더니 접시에 코를 박고 골아 떨어져 버리더라는 거였다.

그후로 오랫동안 나를 '숨도 못쉬는 며느리'가 되었다. 그리고는 제사나 명절이 다가오면 한달 전부터 '며느리 주정하는 꼴 안 볼라카믄 시장가야겠다'는 어머니의 타박을 들어야 했다. '술통며느리'라는 별명도 그 때 생겼다.

이은경(35.대구시 상인동)

△'벙어리' 며느리= 결혼하고 처음 맞는 설날이었다. 4년여를 사귀며 시댁 어른들과 안면이 밝은 터여서 마음 편하게 행동했는데 호칭이 문제였다.

특히 어른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남편의 누나에게는 '언니', 형에게는 '오빠', 여동생과 남동생에게는 00씨로 불렀는데 시부모님이 그걸 듣고 너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를 못하는 게 아닌가.

시어머니에게 조용히 불려간 나는 "그렇게 호칭을 몰라서야 어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 의심스럽다"는 따끔한 '충고'까지 듣게 되었다.

설날 연휴동안 물밀 듯이 몰려드는 친지들. 그들의 호칭을 몰라 쩔쩔 맨 끝에 나는 결국 알듯말듯한 미소만 머금은 채 벙어리 며느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도 처가에 가서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처제' '처형' 정도만 제대로 알고 있었을 뿐 나머지는 온통 실수 연발이었다.

김지은(28.대구시 대명동)

△'사람잡는 떡국'= 벌써 40년도 훨씬 더된 이야기다. 집안에서 막내였던 나는 걸핏하면 형들에게 얻어맞기가 일쑤였던 터라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묘책이 들려온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설날 때였다.

"설날 아침에 떡국 한 그릇 먹으면 한 살씩 더 먹으니까 더욱 의젓해져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힌트를 얻었던 것. 쉽게 나이 먹는 법을 터득한 나는 차례 지내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어떻게 하면 떡국을 한 그릇이라도 더 먹을 수 있을지 혈안이 되었다. 그 날의 목표는 떡국 다섯 그릇이었다. 말끝마다 머리통을 쥐어박기 일쑤인 열 두살짜리 둘째형을 재치기 위해서라면 우선은 열 세 살까지는 당장 먹어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

마침내 차례 음식들을 물리기 시작할 때 잽싸게 떡국이 담긴 쟁반째로 들고 뒷곁으로 숨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결국 목표한 떡국 네그릇을 다 해치우고 그것도 모자라 나머지 한 살을 해결하기 위해 아침상에 달려들었다.

'나이를 먹었다'는 행복감도 잠시. 이어 배가 끊어질 듯 아프면서, 어지러움에 구역질까지 밀려오는데 외마디 비명조차 나오질 않았다. 어느덧 오십이 넘어선 나이에 문득 당시 순진했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이정훈(52. 포항시 남구 송도동)

△'짜다' 시집살이가 싫은 게지= 조필수(40.대구시 범어동)씨는 고무줄로 꽁꽁 묶어 싱크대 안에 넣어놓은 소금을 볼 때마다 10년 전 실수가 생각난다고 했다. 마침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참 설준비를 하고 있었다. 살림을 해본 적이 없어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엄벙덤벙 겨우 시늉만 하고 있었다.

부엌에서 강아지마냥 시어머니만 졸졸 따라다니며 정신없이 허드렛일을 도우고 있었는데 시어니가 '설탕을 좀 사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날랜 재비처럼 가게에서 설탕처럼 생긴 봉지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참 잡채를 만들던 시어머니가 '잡채가 짜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급기야 '설탕을 더 넣어야겠다'고 왕창 잡채에 집어 넣는 게 아닌가. 그런데 알고보니 내가 사온 것은 설탕이 아니라 소금이었다.

시어머니는 "시집살이가 싫은 거구나"며 짖궂은 농담과 함께 "손님상에 올릴 게 아니니까 괜찮다"며 못난 며느리를 감싸주었다. 별로 쓸 일도 없고, 썩지도 않아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는 짜디짠 소금은 시어머니의 너그러움과 그때의 부끄러움을 떠올리게 한다.

△ '자나깨나 불조심'= 지난해 설날 고향인 청도 집에 친척들이 모였다.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지으려고 하는데 가스레인지가 또 말썽을 부리는 게 아닌가. 가스불을 켜려면 성냥으로 켜던지 아니면 라이터로 불을 붙여줘야 했다.

하지만 라이터는 가스를 계속 넣어 주어야 하는데 수명이 다 된 건지 가스가 들어갈 길이 막힌 건지 가스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라이터 가스를 넣으려면 안에 남아 있는 가스를 다 뺀 다음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뒤를 눌러 가스를 다 뽑고 새로 넣어야 했다.

내 딴에는 신경을 쓰느라 행여 마루바닥에 가스가 샐까봐 난 싱크대(개수대)에서 그 작업을 했고 가스가 어느 정도 들어간 듯했다. 그래서 시험하느라고 불을 당겼는데,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고기 타는 냄새가 났다. 싱크대에 남아있던 가스에 불이 붙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머리카락까지 타 버린 것이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가스레인지를 교체하긴 했지만 하마터면 작은 실수로 큰 사고가 날 뻔했다. 특히 명절날 안전사고 조심해야겠다.

박희정(35.청도군 청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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