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설날에 읽는 '노인 7계명'

몽향 최석채 선배님이 J일보 편집국장으로 계셨을 때 신문기사 중 나이와 관련된 기사 때문에 신문사 회장님으로부터 크게 호통을 받은 적이 있었다.

문화면 1단짜리 조그만 기사 중 '함석헌 옹(翁) 환갑기념강연…'이란 제목이 발단이 됐는데 당시 갓 59세였던 회장님의 호통인즉 '도대체 함석헌 이란 사람이 몇살인데 옹(翁)이라고 썼느냐'는 것이었다.

옹이란 '노인'에게나 붙여주는 호칭인데 자기보다 겨우 두살 많은 함선생(당시 61세)더러 옹이란 호칭을 붙여 노인 취급을 했으니 자기도 2년뒤면 노인취급할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일종의 늙음에 대한 반발심이 터져나온 셈인데 그 기분을 미처 못챙기고 '40에 불혹(不惑)이요 50에 지천명(知天命)이며 60에 이순(耳順)이란 말도 있는데 환갑을 지났으니 옹이라고 해도 되잖겠습니까'고 대꾸했다가 "아직도 새파란 사람에게 옹이 다 뭐야 옹이!'라고 호통을 당했다는 일화다. 1961년의 일이니 40년도 더 지난 얘기다. 그 당시만 해도 갓 60만 넘으면 신문기사에서 옹이란 표현을 썼을 때지만 평균수명이 훨씬 더 길어진 요즘이야 80이 넘어도 옹이란 호칭 붙여드리는 걸 조심해야 할 시절이 됐다. 칠십고래희(七十古來稀)를 읊은 두보의 시귀(詩句)도 바뀌어야 할 세상이 된 것이다.

내일 모레 설이 되면 너나없이 또 한살을 더 먹게된다.

마음이야 옹자 붙여지는 게 싫은 젊은 기분이지만 반백이 돼가는 자식이나 손자 손녀의 세배를 받아야 하는 어르신 세대들로서는 설날이 후손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흐뭇한 날이면서도 덧없이 흐르는 세월을 인정해야 하는 씁쓸한 날이기도 하다.그러나 올 설날부터는 어르신 세대도 세상 변화에 맞춰가며 새롭게 살아 가시는게 어떨까 싶다.

씁쓸하게 나이나 손꼽으며 '늙은이가 뭘'하는 소극적 삶은 털어 버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로 대접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수동적 자세도 벗어 던져보시라.

고령자 고용촉진법이니 노년층 일자리 30만 개 창출, 노인 취업박람회 같은 것에만 믿고 기대기전에 이제는 당당하게 실버세대 계층의 사회적, 정치적 파워를 만들어 내고 노년층 권익을 쟁취하는 그룹으로 거듭나보시라는 뜻이다.

공원 벤치에 생기 없이 누워있거나 고스톱판에 기웃대며 한나절을 보내는 일상을 당연한 노년의 삶으로 여기며 살아서는 계속 허울뿐인 노인복지정책 그늘 아래 사회와 2세들로부터 냉대당할 수밖에 없다.

당당히 대접받는 실버세대가 되기 위해 올 설날부터 어떤 자기변화를 해야 할 것인가를 고심해 보시란 뜻에서 '와인'버그와르'란 사람의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될때'라는 노인의 '7계명'을 소개 드린다.

먼저 늘 학생으로 남아 있으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폭삭 늙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뭣이든 학생처럼 배우고 공부하는 열정을 버리지 않아야 노인 대접을 제대로 받는다는 뜻이다.

둘째, 과거를 자랑하지 말라.

옛날 이야기 밖에 화젯거리를 가진 것이 없을때 자신은 처량해진다. 새로운 경험을 모험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셋째, 말을 길게 하지 말라.

부탁 받지 않은 충고나 잔소리는 굳이 하려들지 말라. 모임 자리에서 축사를 길게 하는 것도 노신사가 해서는 안될 금기사항이다.

넷째, 젊은 사람들과 경쟁하려 들지 말라.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해주고 용기를 주며 과거의 내 틀속에 끌어 들이려 하거나 과거의 가치를 지나치게 설득하려 들지 말라.

다섯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음을 만끽하라는 말이다. 고스톱판 대신 공연장에도 가보고 미술관의 전시회도 찾아가고 가끔은 도서관에도 가는 낭만적인 삶을 누리라는 뜻이다. 오페라를 보고 전시회를 찾아가고 산을 오르는 노인층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여섯째, 젊은이에게 내 가진 것을 다 넘겨주지 말라.

그들에게 다 내주는 순간 천덕꾸러기가 될것이다. 재산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늙어서도 끊임없이 계속 내줄 수 있는 인생의 지혜와 덕을 쌓아두라는 뜻이다.

일곱째,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말자.

죽음보다 확실한건 없고 인류역사상 어떤 예외도 없었다. 확실히 저절로 찾아올 것을 일부러 맞으러 나가듯 '죽어야지'를 입버릇처럼 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가 아니라도 마음에 없는 소리 너무 자주 하는 어른을 좋아 할리 없다.

즐거운 설날 떡국 한그릇 거뜬히 드시면서 버그와르의 '7계명'을 한번쯤 음미해 보시는 것도 손자 손녀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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