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이틀 앞둔 7일 새벽6시. 단대목을 맞은 영천장은 시끌벅적한 흥정소리로 날이 밝기 시작했다. 시장은 여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시장 입구 한 켠에서 연신 '펑이요'를 외치는 튀밥 장수 전기상(58.「?씨와 큰 아들 현재(27.가명), 막내 현주(24.가명)씨 세 부자도 손님을 맞느라 신이 났다.
잘 듣지 못 하는 아버지(청각장애 2급)에게 수화로 손님의 주문사항을 전달하는 큰아들(뇌성마비장애 3급)은 할아버지로부터 대물림받은 튀밥장사 3대다. 지난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막내도 아버지를 거들고 있다.
8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시작한 튀밥장사가 어느덧 50년째를 맞은 전씨는 "영천장터에서 평생을 보낸 셈이죠. 펑 튀기를 처음 시작 할때는 인심도 좋고 먹을거리가 별로 없어 장사도 잘 됐습니다"며 옛날을 회상했다. 영천장이 1955년에 본격적인 틀을 갖췄으니 그의 튀밥장사 이력과 같다.
전씨는 튀밥이 흩어지지않게 받아내는 틀망을 직접 고안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튀밥을 받아내는 망이 광목자루였고, 이 자루는 압력이 센 튀밥을 터뜨릴 때면 번번이 날아가 버려 애써 튀긴 튀밥을 반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에 고안한 것이 철망으로 튀밥통을 만들고 그 뒤에다 바람이 잘 통하는 마대자루를 덧 씌웠다. 말 그대로 전씨는 우리나라 '튀밥계'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그런 자부심으로 시골장의 한 모퉁이를 지켜온 전씨 네는 안타깝게도 올해까지만 하고 튀밥장사를 그만둘 작정이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전기료와 임대료 등 각종 공과금 내기도 빠듯해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아무리 원조면 뭐 합니까. 직업과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도 그렇고 수입도 셋이 달라붙어 하루 5~6만원이 고작인데..." 옆에서 부지런히 아버지일을 거들던 작은 아들이 넋두리 처럼 한 마디를 거들었다. 남들은 우습게 여길지 몰라도 65년 간 이어온 3대 가업이 아쉽게도 사라지는 것이다.
영천·이채수기자cslee@imaeil.com
사진설명 : 영천장의 산증인 전씨네 세가족이 7일 새벽부터 튀밥튀기에 여념이 없지만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어서 앞으로 원조 튀밥장사를 보기 힘들게 됐다. 이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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