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주왕산(周王山·해발 720.6m)은 설악산과 함께 바위로 이루어진 한국 자연미의 전형을 보여주는 산이다.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은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다.
주왕산에서 먼저 눈을 놀라게 하는 봉우리는 기암(旗岩). 주왕산 입구 매표소 뒤편 대전사 마당에서 보면 '뫼 산(山)'자는 바로 이 기암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山'자를 빼닮은 형상이다.
우리 선조들이 별반 높지도 않은 이 산을 조선팔경 중의 하나로 꼽았던 연유는 기암에서 볼 수 있듯 더 이상의 조탁을 불허하는 암봉미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에 주왕산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부동면 산의리 내원마을이다.
아직도 전기 없이 살아가는 이 마을에는 그 흔한 전등도 TV도 인터넷도 없다.
대신 이 마을을 밝게 비추는 것은 촛불과 호롱불이다.
아날로그 이전부터 존재해온 '화석' 같은 양초의 포장상자 역시 지난 30여년 전 모습에서 변한 게 없다.
얇은 도화지로 만든 포장상자에는 옛 글씨체로 '○○양초'라고 쓰여져 있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사는데 어려움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고된 것은 45kg이나 나가는 액화석유가스(LPG)통을 주왕산 제1폭포에서 등짐으로 나르는 일이다.
이 마을에는 신문도 없다.
신문이래야 벽에 바른 구문들뿐이다.
우편물마저 산 아래 국립공원관리사무소까지만 배달된다.
전기가 없는 만큼 이들의 생활은 단순 명쾌하다.
해가 떨어지면 완전한 휴식시간. 이 마을에 사는 9가구는 저녁이면 반장인 김희걸(75)씨 집에 모여 감자를 구워 먹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주요 화제는 주왕산에 산재한 약초 이야기, 밤중에 만난 산짐승 이야기, 그리고 가끔은 바깥 세상에 내보낸 자식들을 그리는 이야기. 그래서일까. 촛불에 비치는 마을사람들의 얼굴에는 때묻지 않은 환한 웃음이 가득하다.
이처럼 유쾌한 반상회는 이제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이 마을 주민 가운데 4가구는 관광객을 상대로 차를 팔고 5가구 18명은 농사와 약초를 캐며 살아가고 있다.
임진왜란 때 피란 온 사람들이 1세대라 하니 마을 역사는 족히 400여 년. 50년대 후반에는 숨어든 빨치산 때문에 주민피해도 컸다.
당시 50여 가구였던 이곳은 어지간하면 현재 주왕산 입구 부동면 상의리 마을로 내려왔다.
70년대초 산 아랫동네 전기가설 때 혜택을 보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지다가 결국은 주왕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6년 3월)된 후 전기가설은 아예 물 건너갔다.
폐교된 내원분교를 개조한 산골카페 '내원산방'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이상해(46)씨 부부는 내원마을 9가구를 하나하나 소개했다.
이곳에 토박이는 최기선(70)씨뿐이다.
9대째 사는 최씨는 44년 전 김희철(75)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처음엔 산판 및 숯 굽는 일을 했으며,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35년째 살면서 실의에 차 산에 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어 새삶을 살도록 인도해 유명해진 권영도(70)씨는 '사슴할아버지댁', 27세 나이에 한 달만 수양하자며 이곳을 찾아왔다가 지금까지 살고 있는 '예천할매댁' 최봉연(82)씨와 아들 박갑일(49)씨. 그리고 '재준댁', '고사리부인댁', '억만할배댁', 스님이었다는 '정도사집', 지난해 1월쯤 국내 최초로 '남근 상품'을 의장등록한 허윤규씨 부부 등은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산속마을을 찾은 타지 출신 주민들이다.
이 마을은 그러나 지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주왕산 관리사무소는 "내원마을 정비사업은 주왕산 자연환경을 보존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몇몇 가구가 이주하지 않아 탐방객 상대의 무신고 영업행위가 성행하고 외지인이 기거하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특히 취사나 난방에 사용할 나무를 무단 벌채하고 영업행위에 따른 수질오염, 생활쓰레기 배출 등도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주왕산의 자연을 파괴하는데 관리사무소가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리사무소가 많은 예산을 들여 콘크리트 교량은 놓으면서 정작 마을에는 화장실 하나 제대로 갖추지않아 탐방객들이 용변을 아무데서나 볼 수밖에 없다는 것.
내원주민들은 "내원마을로 인한 주왕산을 찾는 탐방객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만큼 편의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송·김경돈기자 kdon@imaeil.com사진: 폐교를 개조해 산상카페로 알려진 내원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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