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는 농촌-(2)사람들은 떠나고 남은 것은 `빈 것`뿐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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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는 농촌-(2)사람들은 떠나고 남은 것은 '빈 것'뿐

'수십 년째 인구 감소', '초고령화와 버려진 논밭 그리고 폐교'. '아기 울음소리가 멈춘 마을', '색시를 찾아 해외 원정길에 나서는 노총각'. 취재팀이 취재기간(1~4일) 찾은 경북의 모든 농촌 마을에서 맞닥뜨린 모습이었다.

◇대가족에서 홀몸 노인으로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줄기를 따라 500m쯤 올라간 갈평지 마을.

20여 가구가 대대로 고랭지 농사를 지었던 이곳엔 겨우 4가족만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한 때 300여 명이 넘었던 마을 인구는 단 10명으로 줄었다.

가구마다 10~20여 명이 넘었던 '대가족'은 옛날 얘기다.

박순자(57)씨는 35년 전 7남매의 맏며느리로 이곳에 시집왔다.

6남매를 낳아 한때는 20명이 넘는 대가족을 이뤘지만 지금은 남편(56)과 단둘이 살고 있다.

집안 어른들은 고인이 됐고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다

이웃 김동각(74) 할아버지 역시 10명이 넘는 대식구의 가장이었지만 영주, 경주 등지로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부인과 사별한 뒤 벌써 10여 년째 혼자 농사를 짓고 있었다.

홀로 남은 노인들에게는 겨울나기가 가장 힘들다.

취재팀이 마을을 찾은 지난 4일, 김 할아버지는 밤새 수도꼭지가 꽁꽁 얼어 아랫마을까지 내려가 물을 길어야 했다.

"그래도 농사 지어야 하지만 이젠 힘이 달려. 내가 죽으면 이제 누가 농사를 짓나…."

의성군 금성면에서 만난 이우식(71) 할아버지는 "홀로된 노인들만 땅을 지키고 있다"며 "10년 안에 농토 절반이 사라질 위기"라고 장탄식했다.

금성농협에 따르면 금성, 가음, 춘산 3개 면 농협 조합원 3천107명 중 65세 이상은 1천505명(48.4%). 이 중 70세 이상 노인만 995명이다.

금성농협 이문호 전무는 "금성면 명덕3리는 31명 중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조합원이 60세 이상 노인"이라며 "이러다간 조합원도 없어질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아기 울음소리 끊겨

취재기간 청송, 영양, 봉화, 영주, 의성, 예천 등 6개 군의 10개 마을에서 확인한 중·고등학생은 1명이 고작이며 초등학생도 10여 명에 불과했다.

지난 3일 찾은 예천군 보문면 기곡 2리의 한 자연부락. 2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엔 최근 경사가 났다.

주민들에 따르면 18년 만인 지난해 말 아기가 태어난 것.

영양군 일월면 도계 2리 경우 영·유아 및 초·중학생은 한 명도 없고, 청송읍에서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이 유일하다.

오진록(72)씨는 "아이 울음소리는 아예 잊고 산다"고 했다.

영양군 일월면사무소 남상갑 총무 담당은 "누구 집에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면 면민 전체가 알 정도로 신생아가 해마다 줄고 있다"며 "아이 출산이 수년째 멈춘 자연부락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했다.

◇사라지는 학교

노인들만 남은 농촌엔 학교가 사리지고 있다.

취재팀이 방문한 모든 마을은 폐교로 넘쳐났다.

봉화군 명호면 경우 90년대만 해도 5개 초교가 있었지만 지금은 삼동, 고양, 고계 3개교가 폐교하고 북곡초교는 분교로 변해 명호초교 하나만 남았다.

의성군 경우 올해 도옥분교(안평면), 조문분교(금성면) 2개 교가 폐교한다.

전국 최고령 지역인 의성군에는 쌍호초교(9명), 상천초교(16) 등 학생수 10명 내외의 '초미니 학교'도 적잖다.

영주시 용혈2리 용혈분교는 학생이라곤 서정수(11), 경수(9) 형제 단 2명뿐이다.

200여 명이 넘었던 마을엔 25가구, 27명밖에 남지 않았고, 60여 명에 달했던 학생 수도 결국 2명으로 줄어든 것.

영덕군 달산면은 도내에서 유일하게 학교가 없는 면이다.

한때 초·중학교가 3개 있었으나 최고 8천여 명의 인구가 2천여 명으로 줄면서 학교가 모두 문을 닫은 것.

◇버려진 논밭, 빈집

영양군 일월면 섬촌리의 조정석(72)씨는 "몇 년 전부턴 일손이 없어 2천~3천여 평은 그냥 놀리고 있다"며 "마을에서 경작하지 않는 땅이 족히 5만 평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송군의 2003년 농경지면적 조사에서 8개 읍·면의 경지면적 8천84ha 중 11.6%인 938ha가 휴경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들 땅을 제외하고 농민들이 직접 관리(임차 포함)하는 논 밭 중에서도 '놀리는' 땅이 상당수라는 것.

읍면별 휴경지 비중 경우 파천면이 7.9%(38ha)로 가장 많았으며 마을별로는 현서면 사촌리(10.6ha, 13.4%), 청송읍 금곡 2리(6ha, 12.3%), 파천면 병부리(5.6ha, 11.3%) 등이 상당수 논밭을 놀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양군 일월면 도계 2리 '골배골' 경우 집이라곤 달랑 3채뿐이다.

도계 2리는 본마을, 골배골, 무등실 등 3개 자연부락을 합쳐 한때 80가구가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20가구도 안 된다.

취재팀이 지난 2일 이들 부락을 돌아본 결과 사람이 사는 집보다는 곳곳에 '떠난 집'과 빈 집터만이 황량히 남아있었다.

청송군 경우 402개 자연부락 중 20가구 이하가 57.5%(231개)나 됐고, 21가구 이상 50가구 이하도 전체의 30.8%(124개)를 차지했다.

반면 규모가 큰 51가구 이상은 47개(11.7%)에 불과했다.

특히 현동면 눌인 3리의 '삼방골'과 도평 2리 '점곡' 경우 1가구씩만 살고 있었고, 2가구만 남은 자연부락도 15개나 됐다.

◇색시 찾아 해외로

농촌 인구 감소는 '노총각'을 양산하고 있다.

예천군 감천면은 군 내에서 노총각이 가장 많은 곳이다.

전체 22명 중 40세 이상만 12명으로 30대 10명보다 오히려 많다.

최근 예천군의 노총각 실태조사에서 35세 이상의 미혼 농민은 총 95명으로 이 중 40세 이상만 41명에 달했고 50세를 넘긴 총각도 4명이나 됐다.

'국내 색시'들의 농촌 노총각 기피현상으로 베트남, 중국(조선족 포함), 필리핀 등 동남아 신부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예천군의 국제결혼 부부만 90쌍에 이르고 있다.

베트남 출신 아내(21)와 결혼, 오는 3월 46년 만에 아빠가 되는 강흔구(예천군 유천면)씨는 "예천에 사는 베트남 신부만 26명"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베트남' 부부들의 친목 모임까지 결성됐다.

베트남회 권오복(42·예천군 기곡리) 회장은 "아내들의 농촌 적응이나 2세 교육 문제 등을 상의하고 있다"며 "국제결혼은 농촌사회의 엄연한 혼인 문화로 정착하는 만큼 이에 대한 인식의 재정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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