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기억상실

기억상실증은 그 자체만으로도 극적이어서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몇 년 전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아내'는 기억상실증을 정면으로 다뤘다.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유동근을 엄정화가 극진히 간호하면서 둘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몇 년후 원래의 아내 김희애가 유동근을 찾아낸다. '겨울 연가'도 주인공 준상이가 기억 상실증에 걸린 설정으로 극적 요소를 배가했다.

○…지난해 개봉한 정우성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일본영화 '하나와 앨리스'도 기억상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애잔한 사랑을 그린 미국 영화 '노트북'도 마찬가지다. 기억상실증은 멜로물 뿐아니라 액션 스릴러물에도 많이 애용돼 '황비홍6' '롱 키스 굿나잇' 등 무수히 많다. 기억상실 영화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작품은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다.

○…1942년 미국 MGM서 제작한 흑백영화 '마음의 행로'는 로널드 콜먼과 그리아 가슨이 주연을 맡았다. 남자 주인공 콜먼은 1947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명우. 전쟁부상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콜먼은 가슨을 만나 결혼해 살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다. 사고의 충격으로 콜먼은 상실했던 옛날의 기억은 회복하는 대신 최근 3년간 가슨과의 결혼생활 기억을 상실한다.

○…2중 기억상실을 다룬 '마음의 행로'는 그러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가슨이 결혼 기억을 잃은 남편 콜먼의 비서로 함께 있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아내'처럼 삼각구도의 뒤죽박죽한 불행으로 가지 않고도 관객들의 눈물을 뽑아내고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영화처럼 완전한 기억상실과 완전한 회복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한다.

○…드라마 '아내'와 흡사한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남편'자녀와 함께 단란하게 살던 한 여인이 추락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을 간호하던 한 남자와 결혼해 살아왔던 것이다. 무적상태였던 이 여인이 아들의 군 입대를 앞두고 호적을 찾던 중 과거가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기억이 없다. 전 남편은 24년째 부인을 기다리고 있고, 자녀 2남1녀는 되찾은 엄마를 부둥켜 안고 통곡하지만 엄마는 영문을 모른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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