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들 생각-'피터팬'을 읽고

영원한 장난꾸러기 소년 피터팬.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제임스 M 베리(James M. Berry)에 의해서 1904년 탄생했습니다.20세기 초 영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세 아이들(웬디'마이클'존)은 어느 날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아온 피터팬을 따라 네버랜드로 모험을 떠나게 되죠. 네버랜드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어린이들의 낙원입니다. 이곳에서 웬디는 피터팬을 아빠로 생각하고 따르는 '사라진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면서 요정이나 인어들과 놀기도 하고, 피터팬의 숙적인 후크 선장에게 붙잡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 신나는 모험을 합니다.

하지만 세 아이들은 결국 돌아가지 말라는 피터팬의 애원에도 결국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세계,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피터팬을 읽고 다음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원고지 4장 분량의 독서감상문을 써 봅시다.

1. 어른이 되기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어른이 되면 어떤 점에서 좋고 어떤 점에서 나쁠까요?

2. 피터는 아무리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자고 웬디가 애원해도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영원히 자라지 않는 네버랜드에 남습니다. 아이들이 피터팬처럼 영원히 자라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3. 네버랜드에서 웬디는 아이들의 엄마, 피터팬은 아빠의 역할을 하며 가정을 돌보게 됩니다. 엄마'아빠의 역할에는 어떤 남녀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4. 이 책에서 네버랜드는 어린이들의 꿈과 이상이 실현되는 지상 낙원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이상향을 꿈꾸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피터팬 신드롬과 키덜트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른아이'의 증세를 보이는 것을 피터팬 신드롬이라고 한다. 연령적'신체적으로 다 성장했지만 책임감이 모자라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거나 어머니의 품안에서 보호받기를 원하는 남성들을 일컫는 것. 이 증상은 1970년대 후반 D 카일리 박사가 이름을 붙인 것으로 학교 교육 및 가정 교육의 기능 저하와 페미니즘이 급신장되며 발생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이와 비슷한 증상의 하나로 20, 30대 성인들이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갖가지 향수를 잊지 못하고 그 경험들을 다시 소비하고자 장난감과 캐릭터상품 등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것을 '키덜트 문화'라고 부른다. 이는 '키드(Kid)'와 '어덜트(Adult)'가 합성된 '어른 아이'를 일컫는 신조어로 어른들이 어릴적 동심에 다시 빠져드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처럼 '어른아이'들이 양산되면 사회는 혼란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너도나도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은 채 이상만을 추구한다면 사회의 질서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의 사고 차이

동화 속에서는 남녀의 사고차이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피터팬은 홀로 남는 고독에도 불구하고 웬디를 따라 현실세계로 돌아가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고집스러움과 어린 아이 같은 면모를 보이고, 웬디는 피터팬의 만류에도 네버랜드를 떠나 결국 어른이 되는 길을 택하는 것. 또 네버랜드의 생활 속에서도 웬디는 아이들을 돌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하는 등 '모성애'를 드러내는 반면 피터팬은 사사건건 사고를 일으키지만 아이들에게 '용기'를 가르쳐주고, 강인해지는 법을 가르친다.

이 같은 설정은 당시 사회상을 대변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남녀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이분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모험심이 강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여자는 남자에 비해 현실 적응력이 강하고 특히 위기에 처하면 이 같은 현실 대처력은 더욱 증가한다고 한다. 이런 남녀의 차이는 두뇌 구조의 차이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회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성역할이 더욱 극명하게 나눠지기도 한다.

△유토피아

피터팬의 나라는 '네버랜드'다. 이곳은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never와 land의 합성어다. 토마스 모어가 만들어낸 유토피아(그리스어의 '없는(ou-)'과 '장소(toppos)'의 합성어)와도 같은 의미다.

사람들은 항상 이상향을 꿈꾼다. 소망하는 모든 일이 이뤄지는 꿈의 공간이다. 욕심이 많아질수록, 현실이 힘들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이상향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풀이하기도 한다. '아무 곳에도 없는'(No Where)의 띄어쓰기를 바꾸면 '바로 여기'(Now Here)가 된다고. 유토피아는 결국 어딘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바로 이곳이 가장 행복한 공간일지 모른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도움말:배선윤(글쓰기 심리 연구소 '마음 열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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