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춘절의 추억

유학시절 중국에서의 설맞이는 아침에 고향의 엄마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전화를 하시곤 "별일 없나?" "괜찮나?" 정도의 자식에 대한 안부전화는 하루의 시작과 소식을 알리는 까치와 같은 목소리였다.

중국은 설날을 춘절이라 하여 보름간의 명절을 하나의 커다란 행사로 맞이하고 보낸다.

우리나라처럼 수천 수백만 명이 고향을 향해 대이동하는 것은 물론 폭죽을 몇 달치 월급으로 사놓는 등 가히 광적이기도 하다.

기숙사 밖은 온통 하얗기만 하고 거리는 설을 맞는 사람들로 분주한 가운데 몇몇 한국유학생들과 함께 고구려학자이신 강맹산 교수님댁에 세배를 간 적이 있다.

이미 작고하신 선생님은 연변의 강변에 위치한, 도심에서 벗어난 아파트에 사셨는데 많은 서적과 벽에는 평범한 산수화 몇 점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작은 체구에 허리마저 구부정한 교수님은 늘 고향의 부모님처럼 우리들을 반가이 대하고 자상하게 덕담을 들려주셨다.

특히 사모님은 몇 년이 지난 오늘에도 잊히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항시 손님이 방문하면 앞치마를 두르시고 음식을 내놓고 정답게 대하시는 모습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사모님께서는 몇 해전 뇌수술의 결과로 앞을 보지 못하셨다.

앞이 안 보이면서도 손님이 오면 늘 옛날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다소곳이 손님을 맞이하며 과일을 대접하고 부엌을 오가는 모습에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말씀을 나눌 때에도 늘 상대를 바라보면서 말씀을 하시곤 하여 우리들도 사모님 얼굴을 쳐다보며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나에게 "설거지한 그릇의 뒤를 살펴보면 안사람의 됨됨이를 안다"고 하셨다.

사모님이 뇌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남편인 선생님께 큰절을 올리며 "당신이 나를 살려줘 고맙습니다"란 말을 남겨 제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신 분이다.

지금도 멀리 있는 남편 제자들 안위를 걱정하시는 사모님의 모습이 눈에 아련하다.

화가·미술사학 박사 황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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