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럽의 옛 城을 찾아서-(5)독일 노이슈반스타인 성

유럽의 현존하는 고성 중 가장 조형미가 뛰어나고 전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는 성은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노이슈반스타인 성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찾아온 수백 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 바이에른 지방 아르고이 산골 마을을 찾는 이유는 이름난 음식이나 특별한 관광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 하나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우아한 성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벽 옆 바위로 된 암산(岩山)을 8m 정도 폭파시킨 뒤 돌바닥 위에 첫 초석을 세운 것이 1869년 9월15일, 136년전에 착공된 이 성은 주인인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2세가 입주했던 1884년 봄까지 15년에 걸쳐 난공사를 마쳤다. 산골 절벽 암산 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 축조된 데는 훗날 정신병자로 몰려 호수에서 익사한(자살 또는 암살이란 설도 있었음) 10대의 젊은 황태자 루드비히 2세가 18세에 왕위에 오르면서 곧 바로 성을 축조토록 명령하면서였다.

그가 왕으로 즉위했을 19세기 당시 이미 유럽의 정치체제는 왕권시대에서 민주적인 의회제도가 싹틀 무렵이었고 비스마르크가 실권을 쥐기 시작한 독일의 경우 루드비히는 실권 없는 꼭두각시 왕으로 전락해가고 있었다. 젊은 루드비히는 허울뿐인 왕실의 허무함을 세계 최고의 성 축성에 몰두함으로써 정치적 울분을 풀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좋아했던 작곡가 바그너를 자주 만나면서 예술적 성의 축조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도 축조의 한 원인으로 꼽는다. 그가 왕의 실권을 잃지 않고 정치적으로 좌절하지 않았다면 그의 아버지가 남긴 뮌헨의 닌휀 부르크 궁전이나 호엔슈바가우 성에서 만족했을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세계적인 건축 유산인 노이슈반스타인 성은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노이슈반스타인 성은 몰락해가는 왕실의 반발심이 빚어낸 성이었던 만큼 호화롭기 그지없는 구조물로 축성됐다. 당시 시멘트만 450t이 공급됐고 대리석은 멀리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지방의 운타즈베르그 대리석을 실어다 쌓았을 정도였다. 높은 산위로 산더미같은 건축자재를 끌어올릴 때는 증기기관 크레인을 동원했고 바위에는 보일러 검사협회가 건설기계의 안정성과 기능검사를 감리, 유럽의 일반 고성들과는 축조의 기술적 수준에서 뛰어난 건축물임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일반적인 기본설계도면을 당시 유명한 화가 크리스티안 양크가 재완성, 예술적 조형미를 덧보탬으로써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캘린더 그림으로 애용될 만큼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가 결혼도 성공하지 못하고 국정에 소홀, 방황하는 데다 성을 짓느라 누적된 왕실 부채에 시달리면서 정부각료들과의 마찰이 증폭됐고 결국 정부는 그를 정신병자란 진단서를 만들어 국정에서 손을 떼게 했다.

끝내 재위 22년 만인 1886년 호수에서 익사체로 떠오르는 운명을 맞는다. 왕권정치의 쇠퇴가 젊은 왕 루드비히 2세로 하여금 성을 쌓게 했고 목숨까지도 잃게 하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만든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뒤안길에 예술적 감성이 정치권력의 암투를 뛰어넘지 못하고 희생된 한 젊은 왕의 비극적 인생이 서려있음을 오늘날 관광객들은 기억이나 해줄까.

글 : 김 정 길 본사명예주필

사진 : 권 정 호 한국사진기자회 명예회원

사진: 젊은 왕 루드비히 2세의 비극적인 삶이 담겨 있는 독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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