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66조원을 송금하는데도 시스템 '먹통'

안동 풍천농협 박모 지소장이 저지른 희대의 66조 원 금융사기극으로 농협 금융거래 전산상시감사시스템의 허술함과 취약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시스템은 농협이 평소 전산 조작이나 오작동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금융사고를 막을 수 있도록 구축한 첨단 보안장치라고 자랑해 온 것으로 운영체계는 이렇다.

농협중앙회 전산실에서는 전국 농협 창구에서 거래되는 입·출금 상황을 온라인 망으로 실시간 취합해 이상거래 징후가 있거나 통상적으로 1억 원 이상이 거래됐을 때 해당 농협 담당자 또는 책임자에게 실거래 여부를 확인한다.

방법은 전산상시감사실에서 이들의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거래 내역을 확인토록 하고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입·출금 확인서 등 관련 서류를 팩스로 제출받아 정상거래 진위를 가린다.

시스템 운영 형태 자체로 보면 농협이 자신하는 만큼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이번 풍천농협에서 벌어진 불법(무자원) 송금 때에는 시스템 자체가 가동되지 않았다.

박 지소장이 불법송금을 시작한 시간은 지난 7일 오전 11시 58분. 이후 12시 21분까지 23분 동안 1회에 2조 원씩 33번을 송금하고 그는 자리를 떴다.

시스템 기능상 당연히 1~3회 정도의 송금이 이뤄졌을 때 체크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풍천농협 책임자에게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전화통보도 없었다.

불법송금 사실이 밝혀진 것은 1시간 뒤 공범들이 서울 농협 모 지점에 계좌이체를 하러 갔을 때 천문학적인 입금액을 이상히 여긴 그곳 직원에 의해서다.

그리고 다시 1시간 뒤인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안동지역 단위 농협 전체에 당시 예금시재와 여수신 단말기 책임자 키 소재 확인 지시가 내려졌다.

차 떠난 뒤 손 드는 양상이었다.

박 지소장도 송금하는 동안 중앙회 감사실로부터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았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설밑 거래 폭주로 전산망에 과부하가 걸려 고장이 났거나 담당자가 자리를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안동지역 농협의 모 간부는 "이상 금융거래를 확인하는데 2시간 이상 걸렸다는 것은 사고를 차단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며 "당시 전산상시감사시스템은 분명 작동하지 않은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했다.

또 "단일 계좌에 워낙 많은 금액이 입금돼서 그곳 창구직원에 발각됐으니 망정이지 박 지소장이 수억 원 단위로 여러 계좌에 분산해 송금했다면 감쪽 같이 인출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농협(중앙회나 지역본부) 측에서는 여기에 대한 어떠한 해명도 없이 금융사기극이 미수에 그쳐 금전손실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만 자랑인 듯 되풀이하고 있다.

일선 농협직원들은 유사한 사고 재발방지를 위해 반드시 '먹통' 시스템의 원인을 찾아야 하며 일정액 이상 고액거래는 업무담당자의 차상위 책임자나 단위기관에서 1차로 승인을 받는 자체 감사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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