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의 우리 삶인가보다.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50대 여성의 기구한 인생 행로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행방불명된 아내를 24년간이나 기다려준 전 남편, 부상한 그녀를 간호해 주었고 20여년간 동고동락해온 지금의 남편.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제3자들이 더 안타까워 하고 있다.
흐느끼는 딸을 앞에 두고도 과거를 기억 못하는 그녀를 보며 자질구레한 일상의 편린까지도 기억해 내는 것이 얼마나 귀한가, 새삼 감사하게 된다. 꼭 기억해야 할 건 까마귀 고기 먹은 양 까먹고 잊어먹고 잊어버려야 할 건 초롱같이 기억해서 뒤죽박죽될 때도 더러 있긴하지만.
기억이란 건 참 묘한 그 무엇이다. 형체도, 소리도, 내음도 없는 것이지만 기억엔 온도가 있다. 떠올리기만 해도 봄날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억이 있나하면 얼음처럼 차가운 기억들도 있다. 기억엔 맛도 있다. 초콜릿처럼 달콤한 기억도, 새큼한 레몬향 기억도, 여름날 쉰내나는 밥처럼 시금털털한 기억도 있다. 거기엔 감촉도 있다. 부드럽게 와닿는 기억이 있나하면 통증이 따르는 쓰라린 기억들도 있다. 생각만해도 얼굴이 홧홧거리는 부끄러운 기억도 있고,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같은 기억도 있다.
2월 18일. 특히 대구사람들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지하철 참사로 192명의 사망자와 148명의 부상자를 냈던 날. 그 2주기를 맞아 지옥같은 기억들이 다시 마음을 들쑤신다. 희생자 유가족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세월이 약이라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있는 법이다.
중도 시각장애인이었던 미국의 저명 심리학자 고 아놀드 게젤 박사는 기억을 '눈의 자서전'이라고 했다. 일상의 조각들로 엮어진 기억의 퀼트(조각천 수예품)는 우리 삶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겠다.
모든 기억엔 그것을 잊지않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라는 시는 바로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하라고 말해준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 참았더라면/ 그때 잘 했더라면// 그때 알았더라면/ 그때 조심했더라면// 훗날엔 지금이 바로/ 그때가 되는데// 지금은 아무렇게나/ 보내면서 자꾸/ 그때만을 찾는다.'(이규경의 '온 가족이 읽는 짧은 동화 긴 생각'에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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