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심지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권리'라고 일컬어지기까지 한다. 영화도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예술의 한 표현 수단이므로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데 사전 심의 문제로 언제나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는 형편이다.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심의에는 표현의 자유와 관객의 볼 권리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입장과 개인의 자유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적 주장이 대립하게 마련이다.
◇ 자유주의자들은 대개 필름을 삭제하거나 영화 상영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물리적 제재는 문명사회의 방법이 아니라고 나선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주장이 전혀 다르다. 창작으로서의 표현은 개인적인 행위이지만, 관객에게 보여주는 행위는 사회적인 행위라는 거다. 즉 사회가 정한 규범과 관습에 따라야 하고, 창작과 유통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15세 여중생의 임신을 다룬 영화 '제니, 주노'가 18일 개봉을 앞두고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2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18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던 이 영화는 지난달 재심 끝에 15세 관람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감독과 제작자는 '이 영화의 핵심은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려는 메시지'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 SBS와 MBC는 이런 사정으로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아예 '제니, 주노'를 소개하지 않기로 했다 한다. 그러나 KBS는 지난 5일 이 영화를 소개했다. 로미오'줄리엣이나 성춘향'이몽룡도 어린 나이에 사랑했는데 못할 까닭이 없다는 논리였다. 과연 그럴까. 아이를 낳기로 한 주인공들이 그런 뒤의 사랑하는 모습을 부각시키고, 그들의 임신과 출산을 '책임감'이라는 말로 미화한 건 문제가 적지 않다.
◇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섣불리 이야기할 수는 없다. 서양과 동양만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개인의 권리를 절대시하는 서구에서는 예술품의 창조자인 작가를 일종의 초인으로까지 여기나, 동양 사회에서는 개인보다는 가족이나 사회적 집단을 상위 개념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창작의 자유보다는 청소년 보호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라고 하더라도 '제니, 주노'는 '아무래도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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