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는 국가재난관리의 허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사고 후 정부와 시민단체는 여러 가지 개선책을 강구해 왔으며, 최근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대구지하철'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진정으로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문제 있는 '사람'이 문제 있는 '기계'에 불을 질렀고 이에 대응하는 '기술'이 미숙하여 일어난 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 중에서 이제 기계와 기술에 대해서는 철저한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치자. 그러나 사람의 문제는 아직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즉,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이며 유사한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방화범의 방화동기와 대책에 대한 논의는 사고 직후 직관적이고 피상적인 언론보도만 있었을 뿐 학술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관심의 초점에서 멀어져 있다
필자는 대구지하철 방화범을 면담하고 그에 관한 각종 기록을 분석하여 방화동기에 관한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작년에 사망한 그는 사고발생 2년 전에 뇌졸중이 발병하여 우측 마비와 언어장애로 생업이던 택시운전을 그만두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사회활동도 위축됐다.
자신의 병세가 더이상 호전되지 않자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품게 되었으며, 분노와 적개심은 차츰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고 무시하는 일반세상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타인에게 쉽게 화를 내고 충동적이거나 공격적인 증상을 나타내는 '분노/공격 통제불능증'(inability to control anger or aggression)을 지닌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 증상은 분노와 공격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마침내 지하철에 방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개인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이자 방화행위를 충분히 예방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욱 크다
범인은 평소에 "이렇게 살면 뭐하나", "의사 죽이고 나도 죽겠다" 등과 같은 말을 가족들에게 자주 했으며, 강력한 자살의사를 여러 번 피력하였다.
파출소에 찾아가 경관에게 총으로 쏴 죽여 달라고 한 적이 있으며, 사건 며칠 전에도 자신이 치료받던 병원에 찾아가서 죽여 달라며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그가 한 번도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았다는 사실로 봐서 이런 소동은 자살을 원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그는 여러 차례 병원과 파출소 그리고 가정에서 난동에 가까울 정도의 사고위험신호를 계속 보냈으나 아무도 그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가족을 불러 인계하거나 가족들이 만류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런 조치는 당시의 위기만을 간신히 넘기는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이고 그의 분노를 근본적으로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한 번이라도 그를 위기상담기관에 의뢰하여 상담을 받게 하였더라면 끔찍한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성한기(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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