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상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친 현실에 부대끼며 괴로워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때는 한번쯤 훌쩍 떠나고 볼 일이다. 돌아서 가는 길에서 차라리 해법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럴 때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푸는 방법으로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것도 좋을 성싶다. 어차피 멀리 다녀올 작정이라면 일본온천여행도 생각해 봄직하다. 일본 전국에는 하늘이 내린 선물로 표현될 정도로 수천 개의 온천이 있다. 그 중 일본열도 남단에 위치한 규슈(九州)지방에도 환상적인 온천이 수없이 많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뜨고 있는 온천으로 알려진 유후인(湯布院) 온천도 그 중 하나.
규슈 후쿠오카시에서 열린 한?일 관련학회가 끝난 뒤 혼자서 짧은 온천여행을 시도했다. 큐슈는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이국을 느끼게 하는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항공편은 물론 현해탄을 건너는 여객선이 많아 접근성도 좋다. 비싼 물가를 감안하면 한국에서 발매되는 "규슈 레일 패스"의 편리함도 뛰어나다. 또 일본은 치안에 있어서도 세계적으로 안전한 나라라는 평을 받고 있어 나 홀로 여행도 나쁘지 않다.
일본 최대의 온천지역으로 유명한 벳푸행 특급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 빨간색 열차의 이름은 '유후 디럭스'. 하카다역에서 유후인 온천까지는 약 2시간10분 걸리는데 벳푸온천 도착 전에 내려야한다. 지나가는 판매원에게 도시락을 시켰으나 점심때가 지난 시간이라 밥이 없단다. 10분쯤 지난 후 다시 나타난 판매원이 다음 정차하는 역에서 나가사키 명물 도시락을 가져 오겠다고 했다. 일본의 철도역에서 파는 도시락은 먹을 만하다. 에키벤(驛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도시락은 각 지역별로 수백 종류가 있어 일종의 특산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처음에는 주먹밥을 대나무 잎에 싸서 팔기 시작한 에키벤이 열차에 등장한지 120년이 흘렀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차창 밖으로 험한 산과 계곡이 스쳐지나가고 열차는 점점 깊은 산 속으로 진입하는지 터널이 많아졌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로 시작되는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서 묘사한 것처럼 유후인 온천마을은 온통 은빛으로 뒤덮혀 있다. 산 중턱까지 산재해 있는 많은 온천여관에서 모락모락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이 온천휴양지에 들어왔음을 느끼게 한다. 겨울 해는 짧아 희미하게 안개까지 스며들어 아늑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유후인 온천은 벳푸온천에서 열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오이타(大分)현의 중앙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분지 마을이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온천 중에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후인 역에 내리자 유명한 족탕시설이 눈길을 끈다. 160엔을 내면 수건도 빌려주고 시간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뜨거운 온천수 속으로 천천히 발을 담그고 눈앞에 펼쳐진 설경을 보며 가만히 앉았다. 찬바람에 머리는 맑으나 아래에서부터 몸이 후끈거리는 느낌과 함께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유후인 마을에는 역구내 이외에도 무료 족탕을 비롯한 대여섯 군데의 족탕이 더 있다.
본격적인 대중온천탕도 40여개의 업소가 있는데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요금도 100엔에서부터 2000엔까지 다양하다. 개중에는 남녀혼탕도 있다. 새벽안개가 아름다운 긴린호수가에 있는 시탄유(下湯)이라는 대중온천이 남녀혼탕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하며 요금은 200엔인데 지키는 사람이 없으므로 돈통에 양심껏 넣어야 한다. 그러나 주로 노인들이 이용하며 큰 수건으로 몸을 감고 들어간다.
짧은 시간에 마을전체를 둘러보기 위해 역 앞에서 전기자전거를 빌려 돌아다녔다. 유후인 온천의 특징은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크고 작은 미술관, 잡화점, 직접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공방, 작은 카페 등 젊은 여성들의 취향에 잘 맞는 시설들이 많다는 점이다. (유후인온천 관광협회 홈페이지 참고 www.yufuin.gr.jp)
후쿠오카로 돌아오면서 유명한 다자이후 텐만구신사에 들렀다. 다자이후 유적은 백제로 부터 건너온 문화를 이어받은 옛 규슈지역의 행정관청이 있던 곳. 학문의 신사(神社)를 중심으로 일본에서 매화(梅花)가 가장 일찍 피는 곳으로 유명하다. 참배객들이 신사입구 수조의 물을 떠서 정성스럽게 양손을 깨끗이 하고 들어간다. 수험생이나 입사시험을 앞둔 사람들이 찾아와 동전을 던지고 기원하는 모습이 경건해 보인다.
다자이후를 찾은 이유는 매화를 보기 위해서이다. 과연 신사건물 오른쪽에 매화가 활짝 피어있다. 곧 매화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겨울 칼바람에 맞서 움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트리는 매화의 생명력을 봤다. 나 홀로 떠난 여행을 통해 설국의 하얀 연인과 온천탕을 체험했다. 이번에는 약동하는 봄기운 속에 만개한 매화를 보고 겨울이 깊으면 봄도 멀지 않았음을 느꼈다.
박순국 편집위원 toky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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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는 아이치 세계박람회기간에 맞추어 3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일본을 관광목적으로 방문하는 한국인에 대하여 90일간 비자 없이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비행기)
후쿠오카 공항이나 오이타 공항을 이용한다. 후쿠오카까지는 인천공항과 김해공항에서 대한항공, 아시아나, 일본항공 등이 매일 왕복.
(선박)
부산항에서 후쿠오카항까지 카멜리아호, 비틀호, 코비호가 매일 왕복.
(열차)
후쿠오카 하카다역에서 JR특급으로 유후인역까지 2시간10분 소요 하루 6회 왕복.
(고속버스)
후쿠오카 시내 텐진 버스센터에서 하루 8회 왕복, 2시간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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