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데스크-자기만의 문화를 넘어서

현대의 첨단기술을 더욱 빛나게 하는 힘은 바로 '디자인'이라고 한다.

이처럼 기술을 더욱 부각시키는 디자인은 단순히 포장의 의미를 뛰어넘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기술이라는 상품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파워이자 문화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이 디자인에 총력을 쏟고 있는 것도 바로 디자인의 힘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최근 우리 사회는 '디자인 논쟁'으로 크게 몸살을 앓고 있다.

새 지폐 도안 문제가 화제를 모으고 있고, 자동차 번호판을 두고 말들이 많다.

또 제멋대로의 광고판을 규제하고 일신하자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백가쟁명(百家爭鳴) 식으로 의견을 쏟아내다 보니 서로 상충되고 합일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생활 주변에 넘쳐나는 상품에 디자인이 가미되면서 국민의 미적 의식이 한껏 높아져 어설프고 조잡한 디자인은 더 이상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넷 게시판에 봇물처럼 쏟아지는 의견을 보노라면 좋은 디자인을 향유하려는 국민적 열의가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지난해 건설교통부가 번호판 교체안을 발표하면서 일었던 디자인 논쟁이나 최근 한국은행이 위조방지를 위해 새 화폐 도안 방침을 발표하면서 새 지폐에 들어갈 인물을 둘러싼 논란 등은 과거 관의 일방적인 디자인 의식에 대한 본질적 거부 반응 내지는 의사 표출이라는 점에서 달라진 시대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화폐는 국가의 정체성이자 역사적 상징이라는 점에서 그 도안이 크게 중요시되고 있다.

화폐에 어떤 인물과 형상을 담느냐에 따라 시대정신 또는 국민의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서도 여성계나 이공계, 국회의원모임, 시민단체, 네티즌 등 할 것 없이 제각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새 지폐에 실릴 인물과 형상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우리 지폐에는 세종대왕과 율곡, 퇴계 선생이 등장하고, 100원 주화에는 충무공의 초상이 담겨 있다.

퇴계와 율곡의 초상이 실린 1천 원권, 5천 원권을 두고 안동의 한 퇴계학통 인사가 항의성 질문을 했는데 은행 측의 답변인즉 "더 훌륭한 분을 보다 많은 사람이 자주 뵈어야 하기 때문에 퇴계 선생을 1천원 권에 모셨다"고 했다는 것이다.

화폐 도안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가치 지향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동차 번호판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새 번호판을 처음 선보였을 때 관계부처 홈페이지는 여론의 포화로 불이 났다.

그래서 부랴부랴 번호판 크기를 다양하게 하고, 글씨체도 개선하는 등 새 도안작업에 들어갔다.

6개월여의 작업 끝에 최근 경찰 순찰차에 시범적으로 새 번호판을 달았지만 여전히 이러쿵저러쿵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일사천리로 정책을 결정, 시행하던 과거와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새 지폐 도안의 모델을 두고 누구는 시대에 역행하는 인물이고, 누구는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수가 수긍하기 위해서는 사전 검증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을 지켜보면서 더욱 중요한 사실은 모델을 선택하기까지 우리가 '사회적 합의'를 거친다는 점이다.

미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저서 '문화를 넘어서'에서 "다른 문화에 자신의 문화를 투영시키는 방법은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했다.

사람의 눈이 저마다 다르고, 생각도 가치관도 다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획일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지폐나 자동차번호판, 광고판에 이르기까지 국민적 관심과 논쟁이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시해야 할 것은 결사반대식의 옹졸함에서 벗어나 얼마나 성숙한 합의를 이끌어내느냐 하는 점이다.

이 같은 합의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결과물에 '어머나 어머나'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신중하고도 절도있는 논쟁을 벌여보자. 徐琮澈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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