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타계한 미국 극작가 아더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 맨의 죽음'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한 가장의 이야기다. 일류 세일즈맨이 되고 싶었던 윌리. 그러나 수입은 줄고 마침내 예순세살 나이에 해고당한다. "오렌지처럼 알맹이는 먹고 껍질만 던져버릴 순 없어. 사람은 과일이 아니야"라고 절규하는 그에게 남은 것은 월부로 산 집 한 채뿐. 건달이 된 두 아들은 방황하는 아버지를 "미쳤다"고 놀린다. 낙오자가 된 슬픔과 배반감, 늙은 육신의 절망감'''. 결국 그는 자동차 폭주로 생을 마감하고, 그 보험금은 마지막 주택 부금을 물만한 액수였다.
○…7, 8년 전 국내 출판가를 풍미했던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 역시 산처럼 의연한 듯하면서도 어깨 위에 얹힌 삶의 무게로 남모르게 외로움을 삭이며 살아가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렸다. 이 소설은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눈앞에 둔 중년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눈물겨운 사랑을 그려내 우리 사회에 아버지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게도 했다.
○…연극과 소설 속 두 아버지의 모습은 길고 긴 IMF 터널을 지나오느라 지치고 나약해진,지금도 여전히 허리가 휜 이 사회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우리 삶에서 너무나 소중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일상 속에 매몰되어 버린 '아버지'라는 존재. 가족들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장롱처럼 그렇게 무심한 대상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10대가 명랑하다는 이색 조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끈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 메일지 보도에 따르면 16,17세 청소년 중 아버지와 친밀할수록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에 비해 우울증 비율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아버지와의 관계변화가 어머니나 친구들과의 그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그림을 그려도 엄마는 크게, 아버지는 작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는 '돈만 버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군대 훈련병들도 '어머니'라는 단어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지만 '아버지'라는 단어엔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나 수레의 두 바퀴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가 균형을 잡을 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는 법. 물질만능 사회, 실적주의 사회에서 아버지들이 겪는 힘겨움을 생각해보게 된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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