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예술의 상징인 문화예술회관 입구에 가면 농성 중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천막과 컨테이너 박스까지 동원, 농성에 돌입한 지 벌써 100일을 넘겼다.
이들은 대구시립국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다 평정에서 기준 점수가 미달돼 해촉된 사람들이다.
예술인의 생활을 내던지고 추운 겨울, 장기농성을 벌일 만큼 단원 평정제도에 문제가 많은 것일까. 아니면 탈락 결정에 승복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울분 때문일까. 시립예술단 평정제도가 어떻게 진행되며 문제점은 없는지 여러 의견을 들어본다.
▨어떻게 이루어지나
단원 평정은 대구시립예술단 설치 조례 및 운영 규칙, 규정에 따라 단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2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100점 만점인 평정은 크게 실기 평정(70점)과 연습 참여도 등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 근무 평정(30점)으로 나누어지며 평정 결과 70점 미만을 얻은 단원은 재위촉 대상에서 제외된다.
평정을 담당하는 전형위원은 해당 분야 덕망과 식견을 갖춘 인사를 2, 3배수 추천을 받아 단장(대구시장)이 7인 이상 10인 이하(교향악단· 국악단은 악기군별로 4인 이상 10인 이하)로 위촉하고 있다.
단원 평정제도는 1964년 교향악단이 창립될 당시 명문 규정 없이 이루어져 오다가 1981년 합창단, 무용단, 소년소녀합창단 등이 잇따라 창단돼 시립예술단이 출범하면서 오늘날의 골격을 갖추게 됐다.
평정은 매년 실시되어 오다 2000년부터 2년마다 이루어지고 있다.
타 지역 시·도립예술단도 1년 또는 2년에 한번 평정을 실시하고 있다.
평정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한 이유는 잦은 평정이 불러올 신분 불안에 따른 단원들의 동요와 공연 누수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일부 단원의 경우 평정을 앞두고 6개월 전부터 준비에 들어가 공연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
대구시립예술단은 2003년 말 교향악단, 무용단, 국악단, 오페라단, 소년소녀합창단, 지난해 말에는 합창단, 극단에 대해 평정을 실시했다.
이 가운데 상임 단원이 있는 교향악단(현 87명), 합창단(현 57명), 무용단(현 34명), 국악단(현 64명)이 평정의 주대상이다.
오페라단, 소년소녀합창단 등의 경우 상임 연주 단원이 없어 기획, 제작, 반주, 안무자 등을 대상으로 평정이 이루어진다.
평정에 따라 단원이 재위촉되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교향악단의 경우 2001년 말 평정에서 1명, 합창단은 2003년 평정에서 1명이 재위촉되지 않았다.
극단은 2000년, 2002년 각 1명씩 평정에서 탈락했으며 국악단은 2003년 말 평정에서 5명이 재위촉 대상에서 제외됐다.
평정에서 탈락한 단원들 가운데 일부는 노동위원회 제소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극단 출신의 단원이 노동위원회에 제소했지만 패소한 데 이어 국악단 출신 단원 4명이 지난해 3월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이에 불복, 지난해 8월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여기서도 기각 결정이 나자 이들 중 3명은 서울지방법원에 중앙노동위 결정에 불복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하며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문제점
일부 단원들은 "열악한 대우에다 신분마저 불안해 음악에 전념할 수 없다"며 평정제도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신분보장은 연주역량의 퇴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프로 정신이 결여된 처사라는 비난만 받고 있을 뿐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현행 평정제도에서 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실기 평정'이다.
행정심판을 제기한 전 단원들은 "이전 평정 때 높은 점수를 받았던 단원이 갑자기 해촉될 만큼 기량이 떨어지는 일은 상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며 "지휘자가 단원 길들이기 차원에서 살생부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정제도 자체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객관성에는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평정 제도가 봐주기식으로 너무 느슨하게 진행된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에서만 한해 수백 명의 예술인이 배출되는 상황에서 재위촉 기준 점수(70점)가 너무 낮아 단원들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되고 있다는 지적. 때문에 평정 제도가 단원들을 구제해 주는 제도이지 예술단 발전을 위해 기량이 떨어지는 단원을 솎아내는 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교향악단의 경우 수·차석, 단원이 같은 곡으로 평정 받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창원, 마산시립교향악단도 수·차석, 단원이 각기 다른 난이도의 곡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데 대구시향은 프로 연주단체에 걸맞지 않은 평정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평정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개인의 실력보다 학연, 지연에 의해 평정이 좌우되고 있으며 심지어 평정도 받지 않고 재위촉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정 점수에 따라 예술단이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개선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력이 되지 않으면 수석이 차석, 평단원으로 내려가고 수석을 공석으로 비워두어야 하지만 대구시향의 현실은 '한번 수석은 영원한 수석'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또 서울, 부산, 광주, 대전시향의 경우 평정 결과에 따라 수·차석, 단원들 간에도 등급을 매겨 수당을 차등 지급하는 등 경쟁을 통해 연주력 향상을 유도하고 있으나 대구의 경우 수·차석, 단원으로만 구분되어 있는 실정이다.
외국 교향악단의 경우 철저하게 등급제로 운영, 급여에 차이를 두고 있으나 대구시향의 경우 호봉제와 등급제를 병행, 실력이 낮은 단원이 실력이 뛰어난 단원보다 수당을 더 많이 받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선 방향
갖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평정제도가 만들어졌으나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다.
해촉에 항의하며 농성 중인 전 단원들은 "2년에 한번 실시되는 3~5분 정도의 짧은 연주만으로 객관적인 실력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며 실기 평정을 분기별로 실시해 연주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는 등의 상시평가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각계 인사들로 추천위원회를 구성, 전형위원 위촉의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며 지휘자에 대한 단원들의 평가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시평가 제도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연주자가 공연 대신 평정에 맞춰 일정을 짤 우려가 있으며 지휘자에 대한 줄서기가 더 성행할 수 있고 시간과 행정적 낭비도 많다는 우려다.
따라서 평정을 한번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주 시간을 늘리고 곡목도 다양화시켜 확실한 심사 자료를 확보하고, 평단원에게 차석, 수석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어 경쟁체제 확립과 함께 단원 간 위계 질서를 세우는 제도로 평정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평정 결과를 엄격하게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며 형식적인 심사를 막기 위해 외국처럼 철저하게 피검자와 심사위원을 격리하는 블라인드(Blind) 심사를 통해 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과 전형위원 추천위 구성 등은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결과에 승복하는 풍토 정립도 중요하다.
완벽한 제도가 없는 만큼 얼마나 잘 준수하느냐가 제도 정착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단원들이 자기 계산과 달리 평정 결과가 나왔다고 반발하는 것은 예술단 운영의 근본을 흔드는 행위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량이 뛰어난 인재가 단원으로 새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많이 확보되어야 시립예술단이 발전하는 것은 자명하다.
현재의 평정이 너무 느슨한 것은 시립예술단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평정 제도를 보다 엄격히 정비, 시행하는 일은 시립예술단이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 분명하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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